|햇빛편지| 첫 눈 _ 박부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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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첫 눈

 

길옆의 맨드라미가 서리 묻어 추레하다. 이룬 것 같으나 딱히 내 놓을 것 없는 부끄러움인 듯. 십이월이 다가오면 이토록 빈들처럼 허한 느낌이다. 자신과 가족 혹은 누군가에게 더없는 미안함이 찬바람으로 스미는 시간이기도 하다.

꿈같은 일들도 있었지만 열매를 바라기에는 아직 더디고 이 땅의 곳곳에서 빚어진 갈등과 아픔들은 갈수록 깊다. 한국교회의 예후도 그리 좋지 않다. 이런 때에 내리는 첫 눈발은 우리들의 스산하고 시린 목울대를 따뜻하게 녹여 주는 사랑이리라.

첫눈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삶에 찌든 한 해의 상처와 한숨을 덮고 순백의 새 나라를 장엄하게 다시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단풍 숲에 내리는 첫눈은 더욱 숨 막히게 한다. 불을 켜고 추위를 견디는 나뭇잎들 위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불빛들이 포개지며 어두운 시절을 소록소록 밝혀 준다.

첫눈의 감동은 우리 마음이 아직은 세상의 어둠에 온통 길들여지진 않았다는 증표이다. 주님은 만물 속에 따뜻함을 주시고 당신의 살아 계심과 우리를 향한 그 큰 사랑을 송이송이 등불로 나타내신다.

첫눈이 우리의 눈망울에 가득 쌓여 주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로 변할 때 인생의 겨울은 결코 어둡거나 춥지만은 않을 것임을 오롯이 믿게 한다. 바로 그 믿음의 순결이 거기 하얗게 담겨 있다.

큰 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조곤조곤 속삭이는 첫눈의 음성을 들을 귀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주님이 내리시는 은혜의 눈발 아닌가. 우리나라, 한국교회, 그리고 각자의 앞날은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야 할 상황에 있다.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고 답도 별로 많지 않다. 아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략은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 해도 실천할 능력이 없다. 구조적인 모순의 냉랭함은 더하다. 그래서 먼저 뜨거운 은혜를 다시 간구한다.

그 은혜 속에서 예측불허의 칼바람을 뚫고 꿋꿋이 살아 낼 월동 준비를 해야 한다.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반성하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 땅을, 한국교회를, 우리를 고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먹먹한 가슴으로 우러러 첫눈을 맞이한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