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구와 실천으로 시대적 문제에 응답을

0
81

사설

연구와 실천으로 시대적 문제에 응답을

 

성경적 창조론에 대한 합신 교수 선언문이 나왔다. 이는 유신 진화론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우리가 견지하는 신학과 신앙의 본질을 수호하고자 하는 논거들을 표명한 뜻깊은 일이다. 혼돈의 시대에 합신 교단, 나아가 한국교회의 개혁주의 신학을 변질 없이 보수하고 그 발전에 추동력을 제공하려는 신학자들의 변증적 대처는 바람직하다.

차제에 합신 교수진에게 바라는 것은 전공과목의 시각으로 현실의 제반 문제에 대한 역동적인 관심과 성경적 대안의 제시에도 더욱 열심을 내었으면 하는 것이다. 양극화 현상, 갈등과 분노 그리고 여러 병리가 혼재하는 작금의 우리 상황에서 성경적 윤리의 준거를 부단히 연구하며 응답하는 일은 학자적 의무일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실천적 개혁사상가들의 자산을 지닌 네덜란드 등의 개혁주의의 본산지들에서 개혁주의 교회와 그 실천적 성과들이 쇠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을 비롯한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사회적 실천의 더딤에 있다고 본다. 근접한 성경적 답을 시대적 현장에서 실행하는 역동성의 문제이다. 더 완벽한 성경적 정답을 찾아 머뭇거리는 동안 현재적 역사의 시간표는 달라져 있다. 새로운 상황에 맞춘 연구의 답을 내 놓을 즈음 세상은 또 달라져 있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바른 자세는, 비록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답을 일상에서 실행하도록 가르치고 독려하는 일이다. 실행하면서 나타난 오류는 기도하며 다시 시정하면 된다. 그것이 시정되었다 해서 비난받거나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며, 그 때까지의 모든 연구와 축적된 시행착오의 자료들이 즉각 폐기처분될 만큼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런 과정들을 발판으로 후대가 더 성경적인 답을 찾아 간다면 유익하고 좋은 일이다.

교회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성경적 대처 방안을 늘 준비해야 한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힘들고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개혁주의자는 항상 기도와 성경 연구, 상황에 대한 분석, 그리고 공동체적 논의에 힘을 써야 한다. 모호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엔 당연히 섣부른 행동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근접한 정답을 위해 최선의 일을 실행하며 결과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정의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실제로 사회개혁을 위한 제도적 개선의 답을 제시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영국의 사회개혁 역사만 살펴봐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공헌은 지대했다. 요한 웨슬레는 빈자들의 자선 의료원을 만들었고 이런 노력은 그 후 복리 증진, 수형제도의 개선 및 노예매매 반대라는 사회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랜빌 샤프와 윌리엄 윌버포스는 저술과 언론, 국회 입법 활동을 통해 노예제도 폐지에 공헌하였고, 앤터니 샤프스베리는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정상화, 어린이와 여성의 고용 제한, 광산 노동자와 청소부의 생활 보장, 임대하숙제도의 개선에 앞장섰다. 또 조지 뮬러는 고아원 운영의 본을 보였고, 구세군의 윌리엄 부스는 대도시 빈곤 문제에 답을 제시하려 힘썼다. 미국의 찰스 피니와 웰드는 노예제도에 항거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에 적극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초창기인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사회 지도적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그것은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한 사회봉사의 열매로 나타났고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3.1 운동을 포함, 활발한 독립운동의 중심부에도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리하여 조국 독립의 일념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당대에 그들은 민족의 희망이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나름의 사명이 있다. 안팎의 공격에 직면한 성경적 교리를 수호하는 사명과 아울러 시대의 문제와 아픔에 응답하고 제도적으로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며 사회에 공헌할 사명이 그것이다. 이 시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원리적 연구에서 나아가 현실의 문제에도 다각도로 응답하고 교육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개혁주의의 교과서를 정확히 가르치고 제시하는 것은 이후로도 당연히 할 일이고 귀한 일이다. 하지만 여러 양상 속에서 학생들, 성도들이 방황 없이 정답과 그 근사치를 찾아 가는 삶의 진정성을 앞장서서 보일 책임이 지도자들, 특히 신학자들에게 있다. 이번 성경적 창조론에 대한 합신 교수 선언문을 기점으로 이런 일들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