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네가 믿느냐?”- 부활주일을 앞두고

“네가 믿느냐?” - 부활주일을 앞두고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진술의 한 복판에 우리가 흔히 요절로 여기는 내용이 들어있다(요 11:25-27).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애통해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기독교 진리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영생의 종교이다. 기독교 ...

[사설] “동성 커플 축복을 반대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동성 커플 축복을 반대하는 것이 위선”이라는 교황을 단호히 비판하라   지난해 12월 18일, 가톨릭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이라는 교리선언문을 공식 발표했다. 이 교리 선언문은 실로 위험하다. ‘선언하지 않는 것’과 ‘선언하는 것’의 구별을 통해 결과적으로 동성 커플 축복을 향한 정서적 동의와...

[사설] 세속정치에 관하여

세속정치에 관하여 4월 총선을 앞두고 주변에서 여러 불미스러운 소식들이 들려온다. 신학교 어느 동기 단체 메신저 채팅방에서 정치 견해가 좌우로 갈려 심한 언쟁이 오갔고, 심지어 어느 노회에서는 좌우 논쟁 끝에 회원 사이에 얼굴을 크게 붉히는 일도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세속정치에 관해 현재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불일치의 아주 작은 단면에 ...

[사설] 기억하자

‘기억하자’ 2024년 새해를 맞이했지만 우리의 목회 상황은 여전하다. 지금의 교인은 늙어가고, 새로운 젊은 교인 보기는 쉽지 않고, 신학생은 줄어만 간다. 여전히 전도의 문은 열려 있고 교인의 수가 증가하는 교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인은 줄어들고 있다.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장래 교회를 이끌어갈 목사의 수의 부족으로 교회가 겪을 어려움은 쉽사리 짐...

[사설] 영원하신 왕 앞에서

영원하신 왕 앞에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것은 해 바뀜이다. 날이나 달의 바뀜도 그렇지만, 해의 바뀜은 시간에 쓸려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하루가 끝나는 자정 언저리에는 초침처럼 째깍거리며 바삐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지고, 월말의 늦은 오후에는 분침이 썩둑썩둑 시간을 잘라먹은 것 같은 느낌이 ...

[사설] “율법 아래 나신”-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

“율법 아래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설교하자 해마다 서방 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하는 특별한 날로 기념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25일에 앞선 주일이나 25일 당일에 회집하여 성탄 감사 예배를 드린다. 교회는 마땅히 주일마다 성탄을 감사하고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고 부활과 재림의 신앙을 소망 가운데 새롭게 하여야...

[사설]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찬송하는 계절이다. 중세 시대 안셀무스가 “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랜 후에 여러 견해가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인간의 구원 문제와 관련하여 고전적인 대답이 주어졌다. 이레내우스로부...

[사설] 복음설교를 잘하자

복음설교를 잘하자 종교개혁 신학은 이신칭의 교리의 중요성을 교회의 존립과 연결하여 강조한다. 루터의 말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신칭의 교리가 바르게 세워질 때 교회는 세워지고, 반대로 무너질 때 교회도 무너진다. 이 말이 주는 무게는 단지 신학적으로 교리를 바르게 정립하는 작업과 관련하여서만 무거운 것이 아니다. 이신칭의 교리가 교회를 세운다고 할 ...

[사설] 읽지 않는 신문

읽지 않는 신문 기독교는 글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친히 돌 판에 글을 써서 모세에게 주셨고, 십계명을 근간으로 하는 율법뿐 아니라 선지서와 성문서가 글로 기록되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성경을 글로 소유하였다. 비록 예수님은 글을 남기지 않으셨지만(간음한 여자 사건에서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신 것 외에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적...

[사설] 양극화를 경계하자

양극화를 경계하자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표현과 행동들이 보편화되는 모순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이나 생각의 최대치를 나타내고 강조적인 표현을 위한 정도가 아닌, 도를 넘는 자기중심적인 극단의 주장이 소신을 넘어 아집의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정치, 이념, 사회, 경제, 문화, 세대를 망라한 지나친 자기애(自己愛)적인 극단적 표현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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