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자기 성찰 _ 박부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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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자기 성찰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유명한 탈무드 예화 중 두 명의 굴뚝 청소부 이야기가 있다. 둘이 청소를 하고 나와 서로의 얼굴을 보니 한 명은 깨끗하고 한 명은 더러웠다. 둘 중 누가 세수를 할 것인가? 결론은 오히려 얼굴 깨끗한 자가 상대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더러울 거라 생각하고 세수를 한다는 것이다.

여러 해석들이 가능하지만 상대를 통한 자아 인식의 불안정성은 우리에게 자아를 먼저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는 교훈도 담겨 있다. 타인을 비교 대상으로 자아를 평가하거나 무작정 타인을 거울삼는 태도가 늘 바람직하지는 않다.

“네 눈에 들보를 먼저 보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성찰이 선행되어야 서로를 바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중의도 이에 해당한다. 내 몸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자기 사랑이란 물론 이기심이 아닌 올바른 자존감이다. 이는 타인에 대한 비판 이전에 성경적 자기 성찰의 삶이 있어야 함을 뜻한다.

그 후에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베이컨이 말한 우상론은 선입관에 대한 일갈이다. 우리가 은연 중 습득한 선입견에 의한 편견에 갇히는 현상을 지적한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자기의 우주, 자기의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면 또 다른 세계를 이해 못한다. 그렇다고 진리의 상대성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에 대한 얘기다. 이해와 수용은 별개의 문제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암흑’이라는 단편을 보면 노인 까미유가 깨어 보니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 그는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리를 가면서 다가서는 모든 적들에게 자기의 칼을 휘두른다. 몰려든 사람들에게 잡혀 병원에 이끌려가서야 그는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의 시신경이 소멸된 것인데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고 착각한 것이다. 자신을 방어한다며 휘두른 칼은 지팡이였다. 괴롭힌다고 여겼던 적들은 사실은 자기를 도와주려고 애써 접근하는 시민들이었다. 무엇이 암흑인가? 까미유의 자기 세상, 그 우주, 그 동굴이 암흑이었던 것이다.

세상 멸망의 척도 중 하나는 자기중심의 이기심이다. 남의 슬픔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 대국주의에 갇힌 극단적 이기주의. 배려도 이해도 없이 자기만 번영해야 한다는 그 편견이 서구의 황혼을 앞당긴 촉매가 아니었는가.

남북, 북미 대화는 물론이요 총회와 노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많은 논의와 판별과 결의의 순간들이 기다린다. 우리는 어느 동굴에 갇혀 타인을 무작정 비판하거나 혹은 비교 대상으로 삼아 자기를 평가 절하할 것인가? 자기를 돌아보고 시야와 마음 밭을 넓혀 삼가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