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화의 청지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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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의 청지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문화를 지키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사도신경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어진 문화명령은 창조세계를 다스리라는 위임명령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간은 문화를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었다.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창조 질서에 따라 문화를 형성하고 지켜 나갈 책임을 공유한다.

물론 인류의 타락은 문화의 타락을 가져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수의 심판을 초래한 심각한 문화적 붕괴 가운데서도 인류와 더불어 문화를 오히려 보존하시고 구속하고자 하신다. 이렇게 시작된 문화 전쟁의 전선이 정치, 경제, 과학, 윤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최근 들어 더욱 치열해진 문화 전쟁의 전선에서 개혁적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의 청지기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문화를 읽고 이해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문화를 분별하고 선한 문화를 진작시키려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명령에 내포된 경작과 창조의 원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서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통전적인 전망을 가질 때에 우리는 당면한 문화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당면한 문화적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을 선명하게 살아내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와 교회는 건강한 문화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발언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성평등, 동성애, 차별금지법 등과 관련된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자신의 성의식과 윤리 수준이 세상과 달라야 할 것이다. 신앙과 가치의 일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믿는 정치인이라면 관련법의 논의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셋째, 가능한 민주적 수단을 동원하여 문화의 타락을 가속화하는 악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문화 운동이 자비 없는 구시대의 신정(神政)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선한 운동이라도 몰이해와 무례가 전면에 부각된다면, 노력의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지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이웃 사랑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제자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나누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 문화를 판단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세상이 처한 위기와 타락의 참상 앞에서 울며 기도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다섯째, 성도와 교회는 효과적인 복음 제시를 위해서라도 건강한 문화의 지킴이와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오순절은 모든 언어와 문화 형태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이 문화에 창조적으로 관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문화 청지기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수단들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웃 사랑의 정신으로 세속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변증을 계속해야 한다. 문화 전쟁의 배경은 적극적으로 볼 때 이웃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과 싸우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제시하신 인간관과 가정관에 배치되는 행습과 법률에 반대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적 문화가 최선임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처해 있는 문화적 환경에서 악과 싸워야 한다. 비판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선한 문화를 만들고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세상 문화를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명령의 원리에 따라 문화를 새롭게 하는 문화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