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_박부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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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십일월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 

 

 만산홍엽마을이 온통 불을 켠 나뭇잎들로 밝아진다산과 들에 억새풀들이 살랑거리며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준다.

그러나 금세 찬바람이 불어와 첫눈이 흩날리면 화려한 빛깔은 갈색조로 변하고 낙엽들은 이러 저리 쓸린다.

   벼 밑동들만 말없음표로 열 지어 남은 빈들의 쓸쓸함이 더해 가고 돌개울에 얼음이 끼면 마을은 또 다시 무채색의 겨우살이에 든다.

   외면의 무수한 자랑거리들을 벗어 버리고 나무들은 겸허히 제자리에서 한층 내면으로 깊어 가는 생의 의미를 인식하며 짙은 하늘을 바라본다.

이토록 십일월은 오랜 곡절의 뒤안길을 쏘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와 철든 사람처럼 조용하고도 성숙한 얼굴을 지녔다.

   11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치장도 없이 오직 소탈하게 두 다리로만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이다모든 것을 털어 내 버린 빈 몸으로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곧게 선 그 모습겸허하나 단단한 자세그렇게 십일월은 요란함 없이도 많은 의미를 건네주는 말없음표를 닮았다.

   고즈넉한 산마을에 십일월의 노을이 물들면 하늘의 종소리를 듣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거룩한 행렬처럼 새들이 날아든다.

우리도 제자리로 돌아와 화려함을 벗고 말수를 줄이자더욱 단단해지고 겸허히 깊어지는 이 계절을 건너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