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의 일기장] 하나님의 열심_조은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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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

조은샘 청년(지영교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그 시험이 수능처럼 일 년에 한 번이나, 가끔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로스쿨을 준비하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일 년에 한 번뿐인 법학적성시험(LEET)을 망칠까 봐 불안하여 잠 못 이루는 것이었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나는 또다시 1년을 불안해 하며 공부해야 할 테고, 시간은 그걸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고 내 나이는 착실하게 +1 될 것이라는 사실이 못 견디게 불안했다. 그 불안감에 시험 이틀 전부터는 아예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이틀 밤을 꼬박 새고 시험을 망쳤다.

시험을 망친 사실이 속상하기보다는 어쨌든 시험은 끝이 났고 나는 해방됐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너무 기뻐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로스쿨이 내 길이라면 나는 시험 망친 게 원통하고 막막해야 할 텐데 그저 끝난 것에 너무 기뻐하는 나 자신을 보며 법조인은 못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야망도 투지도 적었던 것이다.

결국 로스쿨을 빠르게 접고 취업했다. 다행히 처음 지원한 회사에 바로 합격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고 쉬운 일은 없었다. 나는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고 1년 만에 장렬히 퇴사했다. 퇴사 후 내 생각에 나는 우울증 환자였다. 세상이 두렵고 어른들이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두려운 것은 점점 적어지는 내 통장잔고였다. 나는 다시 세상 속에서 1인분을 해내는 인간이 되기 위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취준생이 된 나는 수험생일 때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게 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고 낙심이 되었다. 계속 불합격하다보니 이젠 합격이라는 게 가상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고 하나님마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래서 최근에는 지원서도 쓰지 않고 하나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항의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계속 나에게 실패를 겪게 하시는 하나님이 미웠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 설명해주시거나 나를 달래주시지는 않는다.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 했고 나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혼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만 화내고 싶어서 내가 직접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신앙서적들을 읽으며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있는지 찾았다.

그러다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꽤 낯설었다. 나를 훈련시키시고 가르쳐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이라니 참 신선한 관점의 전환이었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그런 성실한 신자인 나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내 26년 인생 동안 하나님이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의 열심과 하나님의 열심이 별로 상관이 없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기는 데 열심이셨다. 나를 한동대에 보내시고 이상한 사람도 많이 만나게 해주시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도 열심히 주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에 가고 싶었고 내 인생에 걸림돌같은 사람들과 사건들은 최대한 빨리 손절하고 지체없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결국 하나님의 열심과 나의 열심은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상충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나의 장애물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장애물을 모두에게 주시는 건 아니었다. 꽤나 많은 사람이 자기 열심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근데 하나님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에게 열심을 쏟아부으셔서 내 인생을 고단하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열심>을 읽고 나니 읽기 전보다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화가 날수록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하게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책에서 응답을 얻긴 얻은 것이다. 깨달은 바로는 “내 인생은 내 꺼고 내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목표와 계획이 다 있으며 그걸 이룰 능력도 있으니 간섭하지 마시오”라는 나의 버르장머리를 이번에 고쳐놓으실 작정이신 것 같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대한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쉽게 내드릴 수는 없다. 나는 십일조도 아까운 마음 없이 드려 왔고, 매주 주일을 주님께 드린다며 살아왔지만 “내 인생을 다 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하고 내어드리기엔 나의 인생은 너무 소중한 것이었고 나의 열심으로 받을 나의 영광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인생인데 왜 주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나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 것은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만들어가실 것이며, 언젠가는 기꺼이 내 인생을 내어드릴 수 있는 사람으로 완성시키실 것이라는 책의 내용이었다. 언젠간 주님께서 이런 나를 항복시키시고 주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완성시키실 것이다.

다행히 하나님은 나처럼 성격이 급하시지는 않아서 한 단계씩 차근차근 훈련시켜서 나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을 오늘 발견했다. 지금 나의 훈련단계는 “신뢰”인 것 같다. 지금 나의 목표는 취업인데 하나님의 목표는 신뢰인 것이다. 내가 불합격해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내 인생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훈련단계의 목표인 것 같다.

감사하게도 로스쿨 시험과 다르게 이번 훈련의 테스트는 기회가 많다. 앞으로도 나는 수도 없이 지원서를 넣고 탈락할 것이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테스트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은 한 번에 잘 통과하지 못해도 한 달에 열댓 번도 더 볼 수 있고 통과할 때까지 계속 볼 수 있다니 참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로스쿨을 포기한 것처럼 이 테스트를 포기하고 싶어져도 하나님은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실테니 언젠가는 반드시 이 테스트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합격이 보장된 시험이라니 이것 또한 참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 부디 제가 괴롭지 않게 최대한 빨리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 인생을 망설임 없이 드리는 아브라함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거니까 꼭 들어주세요. 아멘.”

2022. 07. 15 <은샘이의 일기> 중 (조은샘 자매는 2023년 3월 모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해 만 1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