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바른 권징을 행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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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바른 권징을 행하는 방식

 

상담에서는 치료적 동맹(Working Alliance)이라는 표현이 있다. 곧 내담자의 무너진 삶과 인격을 회복하기 위해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신뢰적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맹(alliance)이하는 말은 갑을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를 가리킨다. 이 말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사랑’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실제로 상담자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관계에서는 내담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담자는 내담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내담자는 무너진 자신의 삶에서 상담자의 도움으로 회복의 길을 걷는다. 교회에서 권징이 시행이 되려면 적어도 이런 호혜적인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목사는 성도들로부터 생활을 위한 지지를 받으며, 성도들은 목사로부터 영적 돌봄을 입는다. 목회란 그저 설교나 하고 옳은 것이나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과 이런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배우며 소망하며 확인하며 그렇게 자라가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에서 권징이 없어졌다고 통탄하기에 앞서 우리들은 서로 그렇게 사랑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미숙함을 책망하기에 앞서 그들의 형편을 돌아보고 경제적이거나 영적인 형편들에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권징을 시행하기에 앞서 때로는 진실한 사랑으로 그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먼저 일 수 있다. 곧 미숙한 아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그저 돌보아야 하는 것처럼 죄나 잘못을 책망만 한다고 성도들의 삶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더러는 알아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으며, 더러는 그들이 부끄럼과 수치를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신앙과 삶에서 그들이 자라가도록 돕는 사랑이 권징의 첫걸음인 것이다.

권징이란 말이 담고 있는 뜻처럼 그것은 ‘권면과 징계’이다. 권면은 없고 징계만 있다면 그것을 권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과 돌봄의 의무는 없고 상대의 책임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을 가리켜 과연 치리회를 통한 다스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 새계명이라고 하셨다. 이 계명은 어떤 심미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곧 사랑이 가장 큰 권면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