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사태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민낯_강경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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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사태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민낯

< 강경민 목사, 일산은혜교회 >

사회정의를 개인의 도덕적 결단에 맡기는 일은 무책임의 극치

 

요즘, 큼직큼직하게 터지는 반사회적 부패사건의 중심에는 장로가 있다. 부끄러워서 일일이 예를 들 수가 없다. 고 성완종 씨가 장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족하다.

고 성완종 장로의 신앙과 인격을 공격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다. 고인의 인격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것은 고인에 대한 예우차원이 아니다.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우리 목회자들에게 있음을 통감하기 때문이다.

성완종 장로로 대표되는 한국교회의 장로들, 특별히 보수주의 교회에 속한 장로들은 대부분 신앙과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기준은 무엇일까? 그들은 아무리 바빠도 주일예배를 거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교회봉사도 열심이다. 헌금도 많이 한다. 술 담배 안하는 것은 기본이고 새벽기도도 열심이다.

이 정도의 믿음으로 한 교회를 15년 20년 섬기면 장로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물론 가정생활이나 나아가서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기독교적 선(善)을 상당 수준 이루어낸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마땅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오늘날 그 사람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우리사회 부패의 중심부에 그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을 기초로 하는 개인적 성실성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그들이 반역사‧반사회적 범죄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혹자는 일부 몇 사람의 일탈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사회적 일탈이 극히 부분적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윤리적 교훈은 대부분 개인윤리의 영역에 그치고 있다. 사회윤리라든가, 구조악에 대한 의식은 거의가 먹통이다. 구조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예컨대 강남에 사는 성도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부를 가지고 일정하게 나누는 사업에 동참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8학군을 폐지하여 학군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었다.

불과 200여 년 전 미국 사회는 법적‧제도적으로 노예제도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계시의존사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인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고착시키는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바로 예언자였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성도들은) 예언자들을 핍박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종북프레임으로 예언자들을 압박했다.

물론 노예제도를 신학적으로 옹호한 사람들도 불쌍한 노예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에는 앞장섰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기독교적 선의 실천으로 생각했다. 노예제도가 안겨준 기득권을 풍성히 누리면서 거기서 생긴 불의한 부를 가지고 노예들에게 자선을 베풀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들이라고 착각했다.

어둠의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언제 사회정의를 주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으며 한국 보수교단에 속한 신학자들이 언제 구조악의 실체를 드러내려고 치열하게 분투했던가?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러니 한국교회 성도들, 장로들이 어디서 사회정의를 배우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어떻게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침투시킬 수 있겠는가? 목회자들이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으니 엄청난 권력과 자본이 불꽃처럼 혹은 강물처럼 이동하는 정치‧경제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사 허무하니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만 가르칠 것인가? 세상 일은 거룩한 일이 아니니 세상사는 세상이 가르친 지혜대로 알아서 처리하고 교회생활이나 영적인 일에만 몰두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사회정의나 구조악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일을 한 개인의 도덕적 결단에만 맡겨버리는 일은 무책임의 극치요, 성도들을 사지로 몰아내는 잔인함의 표상이다. 한국교회가 사회정의를 함께 추구하고, 구조악을 찾아내어 함께 싸우는 신학적‧목회적 결단을 소홀히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성완종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성완종 사태는 한편으로는 번영신학의 산물이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뿌려놓은 관념적 하나님 나라 신학의 필연적 열매이다. 한국교회, 특별히 90%를 점유하고 있는 보수주의 교회의 신학적 각성이 속히 일어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수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국 보수교회에 하나님 나라 신학의 통찰력을 앞서서 소개했던 합신이여, 관념적 신학의 보금자리에서 속히 탈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