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온 편지/장창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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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선교사로 5년 넘게 사역하는 동안 한국과 러시아의 유사점을
많이 발견했다. 이는 주로 부정적인 관찰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도 미
래를 위해 자신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 내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 우리는 후진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1. 민족정서
러시아 민족도 한국 민족처럼 개개인들로 볼 때 참 우수하다. 그러나 한국
인은 원칙보다 반칙을 좋아한다. 반칙은 눈치와 관계된다. 눈치는 원칙보다
도 윗사람의 생각을 살피는 힘없는 백성의 처세술이다. 그 결과 원칙보다
윗사람의 기분에 맞춰 살다보니 우리 민족은 어느덧 힘있는 자들의 반칙에
공범으로 참여했다. 유교 문화의 부작용이다. 러시아 국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 이들도 아주 오랫동안 귀족과 지주들의 눈치를 살
피고 그리고 공산 혁명 이후 공산 당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다.
두 국민의 정서도 비슷하여 전통 음악도 대부분 슬픈 단조로 시작하여 단
조로 끝난다. 민요를 부
르는 창법도 비슷하다. 전통 의상도 원색을 많이 사
용한다. 이들의 전통 춤중 강강수월레처럼 손을 잡고 돌기도 한다.
러시아인들도 손님 대접을 잘 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한다. 상이 휘어지게
차리는 습성이 이들에게도 있다. 이들도 손님들이 배불리 먹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한국의 시골 아주머니들처럼 자꾸 먹으라고
권한다. 이들에게 수프는 한국인 밥상의 국과 같다. 이들도 고기와 뼈 국물
로 수프를 만든다. 우리의 곰탕 같은 것이다. 잦은 굶주림이 가져다준 식생
활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도 밭에서 난 농작물은 무게보다는 손 되로 판다. 한 양동이 또는 한
병 단위로 가격을 메긴다. 이 모두 러시아인이 외모로는 서양인이지만 문
화면에서는 동양에 속한다는 증거이다.
서구에서 연사(演士)는 대중을 언급할 때 “Ladies and gentlemen!”이라
고 말한다. 약한 여성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사고가 엿보인다. 그 결과 지금
은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너무나 앞장 서 있는 상황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러시아에서는 호칭 방법이 정반대이다. 한국과 러시
아의 교회 목회자들도 한결같이 “형
제자매 여러분!”이라고 호칭한다. 남
존여비 사상이 무의식적으로 배여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외도가 문제화되었을 때 러시아 여성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
다. 강하고 잘난 남자는 그래도 된다는 동양식 남존여비 사상이 그들에게
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남성들이 성공한 후 젊고 이쁜 처녀를 얻으려고
조강지처와 자식을 버리는 예는 허다하다. .
러시아인이나 한국인이나 잘 참는다. 그러나 인내가 그 한계에 이르렀을
때 과히 혁명적인 사건들이 발생한다. 한국인의 경우 동학란과 삼일 운동
같은 사건으로 터졌다. 비교적 건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대부분 실패
로 끝났다. 그러나 러시아인의 경우 인내의 한계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왔다. 1천년 동안 정교회를 자랑한 유신론 국가였던 러시아가 하루아침에
공산주의라는 무신론 국가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 러시아인의 경우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들이 국제 사회에 보여준 돌발적인 행동도
이를 증명한다.
이들도 공통의 목표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일한다. 당연히 파벌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결국 한 사람의 정치 논리에 의해 사
회가 지배된다. 옐친의 존
재가 이를 잘 증명한다. 동양의 가부장적인 기질이 아직도 러시아인에게도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한국에서 사주(社主)의 독재(獨裁)를 막으려고 재벌
을 개혁하려 하지만 한국의 정당 구조는 아직도 일인 독재 체재이다. 정치
개혁 없이 재벌만 개혁하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잘못이다.
한국과 러시아 유사점은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 민족들도 한국 민
족들처럼 엄청난 이산가족의 슬픔을 안다. 그래서인가 눈물을 이들도 잘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천만이상이 희생되었다. 자연히 이들도 전쟁에
나가는 사랑하는 이와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연인에 대한 유행가를 한때
많이 불렀다. 우리의 6.25동란으로 인한 민족 분단의 슬픔과 같다. 또 스탈
린 당시에도 2천만 이상이 억울하게 숙청당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광주
사태보다 더한 민족적 비극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스탈린의 서거를 슬퍼했다. 한국인도 비슷한 심성이
있어 독재자로 낙인찍힌 이승만 박사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양국민 모두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에서 너무나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
러므로 과거에 대한 분명
한 정리가 안된 상태로 정치가 항상 진행된다. 그
결과 모든 것이 뒤엉킨다. 그리고 좀처럼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한다.
이 모두 두 국민이 이성보다도 감정에 먼저 쉽게 호소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