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6)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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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6)

창세기 24:1-8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

세월에 대하여도, 그리고 사람에 대하여도 이제는 뒷모습을 많이 보이며 살
아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다시 더 젊었
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옛날이 그리워지는 건 분명 아닌데 지나 온 세
월이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 늘 아쉬워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더 멋있고 어른스럽게 그 일들을 처리할 수 있
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이제는 이런 저런 것들이 미련 없이 포기되기도 합니
다. 마치 이삿짐을 싸면서 그동안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을 버리기도 하고 나
누어주기도 하며 정리하듯이 이제는 그렇게 그동안의 생각들이, 일들이 그리
고 품었던 꿈과 야망들이 미련 없이 정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붙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들이 분별이 되기도 합니다. 
저에게 이것은 서
글픔이나 무력감이 아니라 점점 성숙되어 가고 어른이 되
어 가는 징조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나이 들어가는 것과 나이 들어가는 사
람의 마음을 갖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다. 근래에는 교회당을 뛰어 다니는 어
린아이들이 그렇게 예뻐지는 것을 보며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
고 가슴이 뿌듯해지곤 했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
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
이의 일을 버렸노라”는 사도의 고백은 단순히 인격적인 성숙과 영적인 성숙
만이 아니라 제대로 나이 들어감에서 오는 성숙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란 생
각을 해보곤 합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세월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뒷모습이 아름답고, 당
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
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야말로 “노년이 아름다
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2-3년 전에 창세기를 묵상하다가 아브라함의 나이 많아 늙은 때의 모습
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나이가 많아지면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
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노년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
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1절). 큰 
감동과 함께 노년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러나 그 진술이 끝나자마자 곧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구체적으
로 무슨 복을 어떻게 누렸는가에 대한 언급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를 얻기 위하여 늙은 종을 불러 그에게 내리는 단호한 지시가 이어지
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며느릿감을 구하는 나이 많아 늙은 노년의 아브라
함이 보여주는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모습은 노년이 되어서도 수십 년 전에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여전히 붙잡고 단호하게 그 말씀을 따라 사
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
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
여 아내를 택할지니라”(7절). 
자기의 며느리를 얻는 일도 수십 
년 전에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결
정적인 원칙을 포착하여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늙은 종에게도 “하
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한 후에야 길을 
떠나보냅니다(3절). 말씀의 원리대로 며느릿감을 구하겠다는 맹세입니다. 마
침내 그는 며느리를 못 보았으면 못 보았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릴 수는 없
다는 것을 분명히 하여 늙은 종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8절). 
저에게 있어서 나이 많아 늙은 노년의 아브라함의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당당한 기개! 저에게는 그렇게 노년을 사는 그 모
습 자체가 이미 무엇보다도 귀한 복으로 여겨졌습니다. 

당당한 기개 부러워

한 해를 다시 맞으면서, 한 살을 다시 더하면서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은 소원을 다시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