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하자 보수 _ 박부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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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하자 보수

 

과수원을 하는 분이 배 몇 상자를 놓고 갔었다. 기대에 차 열어보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걸 선물이라고?” 뱉고 싶은 말을 삼키며 부득불 감사의 전화를 했더니 그분이 어렵사리 말했다. “일찍 떨어진 배들을 주워 조금 담아드렸어요. 멍든 것들이지만 당도는 높아요. 나중에 좋은 걸로 드릴게요.” 일주일 내내 지치도록 배를 깎아 먹으며 참 많은 상념에 잠겼었다.

할머니를 따라 장터에 가면 창피했다. 채소 장수들이 솎아 낸 무청이나 배춧잎을 보자기에 싸오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랬듯 할머니는 마당에 떨어진 감, 돌담 밑에 숨은 모과 한 알을 줍는 데도 익숙하셨다. 마실을 돌다 오시면 꼭 손에 뭔가 하나쯤은 들려 있었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의 재활용 운동을 실천하셨던 셈이다.

멍들고 썩은 부분이 있으면 제거하고 먹으면 될 것을 요즘엔 아예 통째로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일부를 전체로 쉽게 환치하는 습관 중의 하나이다. 물론 작은 오류를 무시하다 발생하는 더 큰 오류를 방지하려는 태도이긴 하다. 그래서 담석이 생기면 아예 담낭을 제거하거나 암세포의 전이를 막고자 환부를 최대한 절제하는 외과수술이 성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못한 최후의 수단이다. 오점이 있다고 무작정 속전속결로 전체를 잘라냄이 능사는 아니다. 면밀히 잘 살펴 고쳐 써야 한다.

우리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런 관용적 속담이 완전한 진리일 수는 없다. 예외 없는 규칙이란 없듯 오점 없는 사람은 없다. 오직 주님과 그 진리만이 오류와 무관하다. 주관이 작용하는 인격적 관계와 사회 현상 속에는 오류와 오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일도 부분적 잘못 때문에 전체를 매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건축이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애써 잘 만든 법도 하자가 생긴다. 그래서 개보수가 있고 수정안과 개정안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은 자연스러운 변증법적 양상이다.

여기저기 고쳐야 할 것들이 많은 시절이다. 아무리 무너진 집이라도 널빤지 하나, 벽돌 한 장 쓸 만한 것은 남아 있을 터이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이 버리지 않고 고쳐 쓰시는 존재이다. 삶과 역사도 그렇게 하자 보수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 발전해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리라. 멍들고 썩은 곳을 도려내며 먹던 그 배는 유독 달콤 시원했다. 할머니가 주워 오신 시래기로 끓인 국물 맛도 늘 잊을 수 없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