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교회 타락 재촉하는 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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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타락 재촉하는 원인들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다만 허황한 욕심에 따라 구조화된 소수의 지배 세력에 의해서 희생되는 서
민들과 약자들 및 그 소자들이 진정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지를 인류는 항
상 고심해 왔다. 

교회 위기는 사회의 위기

그런 정의를 위해서 권력을 위임받아 칼을 가진 자들은 거짓을 위장하는 인
자들을 미리 정확히 분석하여 이웃에게 가장 선이 되게 칼과 권력을 사용하
여야 한다는 이념이 뒤따라 왔다. 그러면서도 칼과 권력을 사용하는 일에는 
시기와 결단 및 수위와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칼과 권력을 
사용하는 인적 자원이 문제이면 그 칼과 권력은 사람들을 해치는 흉기로 변
하기 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에서 한반도가 가치가 있는 것은 세계 앞에 행복
한 나라가 되는데 있지 않다고 본다.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은 인류 모두에
게 참된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땅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 앞에 
바른 교
회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그 동안에 한반도는 세계 역사에 유래가 없이 간헐적으로 존속해 온 개혁교
회가 꽃이 피고 장로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복된 땅이다. 그렇지만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처럼 그 복된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고 그 앞
에 참된 진리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있음을 잊는지가 오래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의 위기는 모든 분야들에서 그런 복된 땅만큼 하나님
의 지식을 가진 훌륭한 인적 자원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세웠다는 자들에게서 가장 쓰디쓴 피해를 느끼는 그 땅
의 백성들에게 위기는 정치나 경제에도 있지 않고 진정 민주주의 이념 자체
에 있는 것과 같이, 그 땅의 교회의 인적 자원들의 위기는 대 사회 앞에 진
리에 대한 위기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초기부터 오순절 운동과 혼동된 교회의 부흥과 세계 교회
가 자유주의 신학 앞에 마지막 몸부림을 친 결과로 생긴 근본주의 신학에 뿌
리는 내리려는 순간, 진리에 있어서 신사참배와 같은 기독교의 가장 밑바닥
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은 교회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온전한 교회로 회복되지 못하고 교회의 분열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교회의 싸움은 그 싸움이 싸움 자체에 있으면 교회가 싸우는 대상의 수준으
로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역사적 개혁교회가 도르트 회의
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싸울 때, 기독교 구원의 먼 원인들에 대한 성
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완전 성취를 파괴하는 것을 고려한 
하나님의 예정론에 대한 싸움에 집착한 나머지 결국 아르미니우스가 처음 역
사 속에 심으려는 타락을 고려한 예정론에 겨우 턱걸이하는 결정으로 전체 
결정이 이루어졌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도르트 회의의 정통성을 고집하면 할 수록 후기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신
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었어도 아르미니우스 자신의 신학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표준으
로 삼고 있는 장로교회는 그것을 극복한 유일한 개혁교회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에서의 핵심은 영원한 작정의 원인으로서 그 
자신의 의지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의논에 있다고 했을 때, 그 ‘의
논’이
란 용어 앞에 붙은 형용사에 있고 같은 제3장 제5절에 있는 예정의 원인과 
고려 내용에 있다. 
즉 에베소서 1장 11절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사로서 영원한 의논이
란 표현에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눌 수 없이 동시에 형용이 되었다는 것과, 
생명으로 예정된 그런 인류를 하나님께서 그의 단순히 자유로우신 은혜와 사
랑으로부터 믿음이나 선행들 혹은 그들 중 어느 것 안에 보존이나, 피조물 
안에 어떤 다른 것도 그를 움직이는 조건이나 원인들로서 미리 전혀 고려함
이 없이 예정하셨다는 표현에 있다. 예정에 있어서 죄나 타락 등 어떤 다른 
것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귀중한 표현이 고백되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같은 제3장 제6절에서 그의 영원하고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의한 모
든 수단들이 예정되었을 때, 그 수단들 중에 대상에 대한 표현 다음에 택함
이 있고 아담 안에서 타락이 있으며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구원의 서정들
이 열거되어 있다는 데 있다. 
카톨릭 신학과 도르트 회의를 극복한 또 다른 예가 예정의 주체로서 하나님
의 아들이 아닌 예정의 내용으로 중보자 그리스도에 대해서 고백할 때, 창
조 전(히 
1:2; 엡 1:4-5; 딤후 1:9)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에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와 선지자, 제사장, 왕, 그의 교회의 머
리와 구주, 만유의 후사 그리고 세상의 심판자로 택하고 정하시기를 기뻐하
셨다는 표현에 있다. 

종교개혁정신 발판삼아야

그러나 이런 고백적 특징은 1580년대 이후의 개혁교회의 정통적 신학으로 겨
우 회복된 것에 불과하다. 한국교회의 바른 개혁신학은 거기에 이어 시작하
고 과학의 시대에 맞는 개혁신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 후 시대의 신학들
을 모범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교회의 타락을 재촉할 뿐이다. 
ribrt@rib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