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교직자 수양회 특집 <2>| 바른 신학과 목회_김병훈 교수

0
2041

바른 신학과 목회 엡 4:1-16

< 김병훈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부르심이란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목사로 세움을 받은 우리들은 목사로서의 부르심과 관련해 적용의 교훈을 받습니다.

  1. 성도의 부르심에 담긴 의미

 

먼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며(엡 1:5), 또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며(엡 1:7),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기업을 얻는 상속자가 되었음을 뜻합니다(엡 1:11).

아울러 성도의 부르심은 성도의 상태적 변화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끔”하기 위한 목적을 갖습니다(엡 1:4). 이것이 목적인 까닭은 부르심을 받았다 할지라도 곧 바로 이루어지는 사실이 아니라 이루어져야 할 당위적인 목표이며 또한 반드시 이루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부르심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을 갖습니다(엡 1:6,12,14).

요컨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이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빚어 가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잘 알려진 에베소서 2장 1-10의 말씀은 이러한 부르심의 의미를 구원론의 관점에서 선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1. 조직체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란 성도들을 향한 이러한 부르심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입니다. 그리고 목회란 교회를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을 수종드는 목사의 직무활동입니다. 따라서 바른 목회를 감당하기 위하여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11-16절의 말씀은 교회에 관하여 두 가지 측면을 교훈합니다. 하나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되 목사라는 직원을 두시는 조직체로 세우셨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필요에 따라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기관이 아니며, 또한 더 나은 조직 구성체를 생각하고 목사직을 임의로 폐기하여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는 목사가 있어야 하며, 목사가 없이는 교회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559년에 작성된 프랑스 신앙고백서는 25항에서 “이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권위로 세워진 교회의 제도는 신성해야 하며, 가르치는 직분인 목사들이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교인들은 목사들이 정당하게 부르심을 받고 그들의 임무를 충실히 다하면, 그들의 가르침을 존경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도를 두심은 그들의 도움과 종사자들이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고, 그러한 제도로 우리를 다스리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직분을 없애려는 모든 신령주의자들을 배격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회의 측면은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본문 15-16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는 말씀은 교회가 이루어야 할 내적인 성질을 교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조직체로서의 교회가 직분과 방편을 통해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드러낸다면,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성령의 은사들과 재능들을 다해서 서로 연합하여 영육 모두 선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나타내셨던 역사적인 신약 교회의 모습에서 교회의 두 가지 측면이 모두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 말씀 가운데,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는 것은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표현하며, 또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의 말씀은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도시대에 이루어진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지상명령, 곧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 의도한 이상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측면이 필요하며, 또한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지키는 모습 가운데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측면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 목사가 가져야 할 교회론적 인식

 

그렇다면 목회는 무엇을 하여야 하며, 또 무엇으로 목회가 진실하며 신실하게 이루어졌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교회론의 맥락에서 답이 주어집니다. 곧 교회가 조직체로서 견실하며, 유기체로서 열매를 드러내도록 노력하는 목회일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일은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므로, 사람이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체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분리된 두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의 두 가지 모습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목사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에 필요한 자신의 직무를 선히 감당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목사는 기관으로서의 교회를 보여주는 교회의 표지를 충실하고 바르게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칼빈이 교훈하는 바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게 선포되고 그 말씀을 들으며,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라서 성례가 시행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합니다”(기독교 강요 4.1.9),

여기서 목사는 어느 교회가 교회의 표지를 충실히 다 행하고 있다고 하여도 그 교회의 교인들이 모두 영적으로 부요한 것은 아니며, 목회란 연약한 성도들이 자라나도록 하는 일이라는 점을 유념해 두어야 합니다.

1566년에 작성된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교훈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참된 교회의 지표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좁게 보고 다음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즉, 고의적으로 성례를 멸시하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본의 아니게 성례에 참석하지 않거나 못하게 된 사람들, 비록 때로는 믿음에서 떨어질지라도 완전히 없어지거나 아주 믿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이나 혹은 연약하기 때문에 불완전함과 잘못을 노출하는 사람들은 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지 않는다 …. 자기의 주인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방황하거나 연약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백성에게 날마다 어떤 일이 있어 왔는지 우리는 안다. 그리고 사도 시대의 갈라디아와 고린도에 있던 교회들이 어떤 교회였는지 우리는 안다. 사도 바울은 그들 교회에서 심각한 범죄를 동반한 결점들을 발견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 교회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라고 부른다(고전 1:2, 갈 1:2)”(17장 14항).

비록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른 선포와 성례의 적법한 시행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은혜를 받아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 일에는 차이가 있으며, 개 교회마다 또한 서로 차이가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연약함과 성장의 더딤을 참아내지 못하고 정죄하는 태도로 대하거나, 그것을 들어 교회가 아닌 것으로 단정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도들과도 다르며 개혁신학자들과도 다른 것입니다.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측면이 시행이 되고 있으면, 비록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측면이 연약하더라도 여전히 참 교회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에는 가리지가 섞여 있음을 목사는 유념해야 합니다. 다시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체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이 다 성도, 즉 살아 있는 진정한 교회 지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만 듣고 사람들 보는 데서 성례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같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일한 의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예배해하고 사랑을 베푸는 의무를 수행하며, 불행 중에서 한 때는 참음으로 견디는 것처럼 보이는 위선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적으로 성령의 참 조명을 받지 못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믿음과 진실함과 끝까지 이르는 견인을 갖지 못하고 있다”(17장 16항).

연약한 교회에 또한 가라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목사는 한편으로는 교인들이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신앙을 격려하며 가르쳐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라지가 일어나 목사의 진리사역과 교인들의 거룩한 생활에 해를 깨치는 자들을 가려내어 이러한 자들이 교회 내에서 번성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 곧 교회의 표지인 말씀과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가라지가 혹시라도 드러나거나, 또는 연약한 교인의 신앙적 나태와 방종을 다스리는 권징이 시행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목회적 책임이란 단순히 교회의 외형을 크게 하는 것일 수가 없습니다. 목회적 책임이란 교회의 표지인 말씀과 성례를 바르고 적법하게 시행하여,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을 통해 은혜를 받아, 성도들을 성장토록 하며, 가라지들에게서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성실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1. 목사가 가져야 할 목양의 자세

 

목사가 이러한 엄중한 목회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은 “성령 안에서 겸손과 온유한 심령으로 오래 참고 서로를 용납하는” 자세로 행할 것을 교훈합니다.

한국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가운데 연약한 교인을 질타하고, 또 다른 연약한 교회를 비방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목사는 목양을 함에 있어서 교인들에게서 용서를 받으며 목회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합니다. 목사도 연약한 성도로 목사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교인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많은 허물들을 교인들에게서 용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양무리의 본이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하되 그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여서는 안 됩니다(벧전 5:2-4), 오히려 교인들이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힘써야 하듯이, 목사는 친절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의 태도를 반영하는 목양의 사역을 행하여야 합니다.

 

  1. 목회의 목표: 진리와 사랑

 

목사가 힘써야 하는 목양의 활동, 곧 목회는 결국 두 가지 초점으로 모아집니다. 에베소서 4장 13-16에서 이르듯이, 온 교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며,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사랑 가운데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곧 하나는 기관으로서의 교회의 책무인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인 사랑이 풍성하게 드러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어느 하나라도 현저하게 부실하게 되면,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이 가운데 우선적인 것은 물론 진리의 말씀 사역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진리의 말씀 위에서 자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보는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는 바로 목양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과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할 때(엡 1:17-19) 그것은 바로 진리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기”를 기도할 때(엡 3:16-19) 그것은 바로 사랑의 충만함을 위한 것입니다.

 

  1. 목양의 책임을 감당할 방편: 성경 강해와 요리문답

 

이러한 목양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목사에게 주어진 것은 소위 은혜의 방편이라고 일컫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 그리고 기도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지탱하며 성장시키는 매우 강력한 방편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성례는 보이는 말씀으로서, 보이지 않는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더불어, 성도들에게 은혜를 공고히 해줍니다. 이러한 은혜의 실행과 강화는 신비로운 일이므로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로 그 응답을 받습니다.

목회자들은 성경을 풀어주는 설교를 행하며, 또한 요리문답을 적절하고 꾸준하게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요리문답은 신앙의 실천을 위한 아주 구체적인 지침을 교훈합니다. 목회의 실천적 방안이란 신앙의 실행을 위한 것이며, 그것에 관한 것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요리문답입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무엇을 믿어야 하며 행하여야 하며 또한 바라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요리문답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또한 가르쳐 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이 세례를 받는 동안 이미 세레를 받은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 것인지, 성찬을 받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등은 모두 실천적인 내용이며,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요리문답은 답을 줍니다.

요리문답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순한 지식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랑을 열매로 맺는 법이듯이, 요리문답은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교훈하며, 그리하여 성화와 사랑의 결국을 향하여 나가도록 교인들의 믿음을 이끌어 갑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목회란 무엇입니까? 진리의 말씀에 충실하며, 그리스도와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데에 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른 신학 위에서 바른 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할 길이 없습니다.

 

마치는 말

 

정암 박윤선 박사님의 글 “개혁교회의 목사상”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시대의 ‘개혁’이란 것은 이미 성경대로 이루어 놓은 개혁교회를 그대로 잘 지키자는 교회 운동이다. 이같이 종교개혁의 유산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은 비참하게도 교회 교리가 불신임을 당하고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혁운동이 교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느 교회든지 교리를 문서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교리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교리를 문서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교리를 수호하지 않는 교회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동서양을 물론하고 좋지 못한 유사점이 있으니, 그것은 참 교회의 세 가지 표지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바로 전해야 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미급한 형편이라고 생각된다. 목회자들은 그 자신이 성경을 바로 깨닫고 바로 전하는 성경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계속 힘써야 된다.

그뿐 아니라, 권징 시행을 바로 하는 것이 참 교회의 표지인데, 오늘날 교계에는 권징 시행이 거의 없는 실정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권징을 바로 시행하는 때에 교회의 권위가 서게 되고, 주님의 영광이 교회에 나타나게 되고, 온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다 함께 정신을 차리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거룩한 삶이 나타나게 된다.

목사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명확하게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또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과 강권을 받아서 진실과 인내로써 주님의 교회를 희생적으로 봉사하도록 지도할 책임이 있다

<개혁교회의 목사상, 『성경과 나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