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이야기 14] 역사 속에서: 낭뜨 철회 이후_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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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낭뜨 철회 이후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대표 : 조병수 박사)

루이15세는 58년 동안 통치하면서 증조부 루이14세의 위그노 박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는 위그노에게서 모든 법적 보호를 박탈하였다. 위그노의 결혼은 불법동거이고, 위그노의 자녀들은 사생아였다. 위그노에게는 상속도 장례도 불가능하였다. 루이15세의 치하에서 수많은 위그노들이 투옥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갤리선 노역으로 끌려가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박해 가운데서도 위그노는 재기하였다. 1726년, 광야교회는 루이14세 치하에서 66년 동안이나 모이지 못했던 총회를 재개하였다. 스위스 로잔에서 양성된 설교자들이 프랑스로 밀입국하여 예배당을 빼앗긴 채 광야로 내몰린 양떼에게 질 좋은 영적 양식을 공급하였다.

루이16세는 계몽주의 영향 아래 할아버지 루이15세와 달리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관용 정책을 펼쳤다. 그는 “베르사유 관용칙령”에 서명함으로써 위그노들에게 시민권을 허용하는 길을 열어주었다(1787.11.17.). 루이16세는 박해를 완화시킨 까닭에 위그노들에게 “좋은 루이”라고 불렸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폐위되어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고(1793.1.21.), 아홉 달 뒤에는 사치를 일삼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서 생애를 마감하였다(1793.10.16.). 광야교회 지도자 뽈 라보 목사의 아들 쟝뽈 라보(생 에띤느) 목사는 1785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 돌아온 라파예트 장군에게 발탁되어 루이16세를 지지하는 쪽에 섰다. 후일 라보 목사는 국민의회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되었지만, 개혁파의 순종 원리를 따라 왕정 구체제(엉성 레짐)를 지지하는 바람에 자코뱅파에 의해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하였다(1789.8.26.). 바스티유 감옥 습격 같은 대규모 사건들이 연속되는 혼란스런 소용돌이의 끝에 구데타로 등장한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였다(1799년). 나폴레옹은 위그노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데 협조적이었고, 위그노 교회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축의를 전달할 정도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정치 상황은 실질적으로 위그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1802년 4월 7일, 나폴레옹은 위그노 교회를 국가에 복속시켜 국가교회로 만들어버렸다. 이 현상은 1905년에 교회와 국가가 법적으로 분리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 이후 교회 건물은 국가의 소유로 남았다.

19세기 중반부터 이성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신학이 프랑스에 유입되면서 개혁파 교회 안에는 정통노선과 자유노선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사분오열된 개혁파 교회는 도시에서 힘을 잃어 농촌에 흩어지면서 소수집단으로 전락하였다. 20세기 초부터 신교의 열세를 만회할 목적으로 대통합 운동이 전개되었다. 프랑스 신교는 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분위기를 타면서 루터교와 감리교 등 다양한 교파들을 연합하는 방향으로 치달려 “프랑스 개혁교회”(ERF)를 결성하였다. 연합체는 “개혁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종교개혁 당시의 개혁파와는 많이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이런 경향에 반대하는 소수 교회들은 “프랑스 복음개혁교회 연합”(UNEPREF)을 결성하여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는 위그노의 본래 신앙고백을 견지하는 교회들이 포함되어 있다.

4백년 이상 지속되면서 목숨까지도 가볍게 앗아가는 혹독한 박해는 현재 프랑스의 전체 인구 가운데 신교 신자를 기껏해야 1퍼센트 안팎으로 묶어두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을 무의미한 숫자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고난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습득하여 고난이 연속되는 일상 가운데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고, 교회를 설립하고 직업을 발전시켰던 위그노 선조들의 길을 지금도 위그노 후예들이 기꺼이 따라간다면 소수의 힘을 얕보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신앙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선조들의 모본을 후예들도 꿋꿋이 따라야 한다. 역사는 신앙을 이기지 못한다!

 

갤리선 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