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58)-아름다운 지위 (딤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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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위 (딤전 3:13)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소년시절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여름마다 친구 목사님들과 더불어 산상
집회를 열었다. 나는 어느 집회였던가 한번은 목사님의 분부가 있어서 집회기
간 내내 목사님의 심부름을 맡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강대상 바로 밑에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목사님은 구원의 감격을 설명하면서 어느 신사가 거지 아이를 데려다가 양
자로 삼아 기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사는 아이를 기르면서 이 다음에 크
면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말을 거듭해서 일러주었지만, 아이는 나중 일은 둘째
치고 지금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를 데려다가 아들로 삼아준 신사의 호의
에 그냥 감격해서 하루종일 집안을 쓸고 닦고 섬겼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설
교를 들으면서 내 머리 속에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충성은 구원의 감격으로

사실 우리가 어느 직분이든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은 이 
직분을 잘 이행하
면 나중에 어떤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직분
을 잘 감당하면 이후에 어떤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둘째 문제이다. 그 
이전에 우리가 맡은 직분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까닭은 죄악과 암흑 속에서 고
스란히 죽을 운명에 처해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
을 격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2),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사도 바울
이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장차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미 주어진 은혜를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도 바울의 직분 
이행은 목적보다는 원인에 그 이유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수여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선물 가운데 한 가지가 “아름다운 지
위”이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잘 섬긴 사람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 비
록 직분
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처음부터 무엇을 얻으리라는 목적 때문
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
람에게는 어떤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충성엔 마땅한 결과 따라

이것은 정말이지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일할 곳이 없어서 하루종일 놀고 있
던 사람이 일자리를 맡은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결국은 하루종일 일한 사람
과 똑같은 삯을 받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러므로 잘 섬긴 사람
에게 아름다운 지위가 주어진다는 것은 은혜 위에 은혜이다. 
잘 섬긴 사람에게 “아름다운 지위” (이 말은 신약성경에 오직 한 번 사용되
었다)가 주어질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것은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이 내세에서 특별한 자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뜻
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선물이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인데, 이것이 내세적인 의미보다는 현실적인 의
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아름다운 지위도 현실적인 것으로 이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이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직분자에게 존경은 마땅한 것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취하기 위해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잘 섬긴 결과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
이다. 이 두 가지는 선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는 사람에게서 영
광을 얻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다가 잘 섬긴 까닭에 마땅히 존
경을 받아야 할 사람까지 매도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현
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신자들마저도 잘 섬긴 사람들을 존경하고 칭찬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잘 섬긴 사람에게 아름다운 자리를 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며, 교회
에서 잘 섬긴 사람이 아름다운 자리에 앉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름다운 교
회가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