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더딘 꽃_박부민 편집국장
더딘 꽃
봄은 왔는데
꽃들이 더디다
따뜻해졌는데
공기가 탁하다
그들은 세상이
더 맑아지길 기다리는가
오늘도 산자락 먼지 털며
둘레길에 나설 참
목련, 해맑게 깨어나는
얼굴들 보고 싶어서
동백꽃, 그 터지는 웃음
많이 보고 싶어서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햇빛편지] 대숲 바람_박부민 편집국장
대숲 바람
눈보라 버틴 뿌리들의 울음과
댓잎 아카펠라 화음이
생성한 숲 바람
마디마디 새 숨 불어 넣고
속속 젖어 들어 반짝이는 빛 물결
어둑히 찌든 기억을 씻어 내며
온 산에 솟구쳐 퍼져 가네
흔들려도 잠시만 흔들리다
다시 함께 청청 일어서는
푸른 사람들의 벅찬 메아리
박부민 국장 nasar...
[햇빛편지] 봄맞이_박부민 편집국장
봄맞이
자전거 뒤 철겅철겅 고장나
거들먹거리는 받침대 뜯어내듯
산들은 칼얼음 떨어내
가슴 녹인 개울물을 내려보낸다
바람에 목욕재계한 가로수길
웃음기 환한 재잘거림 들어봐
웅크린 마을도 몹쓸 역병 몰아내고
붉은 동백으로 깨어날 테지
질척질척 발바닥 달라붙던
눈 묻은 흙덩이 털어낸 듯
홀가분한 봄이 스멀스멀 오나 봐
말끔...
[햇빛편지] 선거철 단상_박부민 편집국장
선거철 단상
선거철이면 으레 다른 견해들로 다툰다. 그걸 서로 자연스레 여기며 원수처럼 대하지 않고 합리적 공존 속의 건전, 정당한 경쟁을 하는 게 정치일 터이다.
매번 생각한다. 자기 견해를 폭압적으로 강요하거나, 형식적 화목을 도모하기보다 차라리 치열하게 논쟁하고 각자 입장을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드러내는 편이 낫다.
그게 냉정해...
[햇빛편지] 둘러앉은 밤_박부민 편집국장
둘러앉은 밤
거두절미 없이 인절미 치대듯
눈보라 섞인 찰진 이야기
어둑하니 멍든 곳 상한 곳
다 깎아 버리지 않고
손칼국수처럼 주절주절
칼칼하게 늘어놓고픈 절절한 밤
벗들이랑 발 종종 쏘다니던
그 골목 호롱불 웃음을
군불로 다시 지펴 낸다
좁은 방, 누구라 마다 않고
...
[햇빛편지] 눈꽃 마을_박부민 편집국장
눈꽃 마을
눈 속에 파묻혀
먼 산길 응시하는
마른 억새풀
이 겨울이
그들에겐 많이 어둡다
가슴 누르는 적설량을
더는 잴 수도 없지만
눈보라 뒤 열린 그림 한 폭
마을은 바람에 떨며
또 명징하게 피어난다
고드름 가득할수록
그 눈물 진 그늘에
봄이 싹트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박부민 ...
[햇빛편지] 설경_박부민 편집국장
설경
눈송이 눈송이
수천 수억의 꿈들
하나하나
검푸른 산을 채운다
차곡차곡 숨 고르며
들렘 없는 등불들
저마다 작은 일생을 켜고
그늘 깊이 낮아지는
꽃송이 꿈송이
외진 기슭이라 내버리지 않고
단풍 진 골짜기에서
칼얼음 봉우리까지
꾹꾹 눌러 마른 숲을 메꾼다
숲의 뼛속을 적신다
누군가 애써 첫새벽 문 열어...
[햇빛편지] 소설묵언 小雪默言_박부민 편집국장
소설묵언 小雪默言
오늘이 소설
보름 후엔 대설이니
눈발 내릴 때가 됐다네
벼 밑동처럼 말 수 줄이는
살얼음 풍경 속에서
분주했던 생계의
뒷길을 돌아보면
이룬 것 없는 빈 손에
부끄러운 마음뿐
흔들리는 믿음도 삶도
뉘우쳐 추스르며
제 앞의 등불을 켜고
은총의 뜨락에 말없이
젖은 눈송이로 엎드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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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몽당연필_박부민 편집국장
몽당연필
몽땅하지만
연필인 것을
신이 쓰시면
걸작인 것을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기
겉은 버리고
속은 벼리고
흑이 백으로
밤이 낮으로
몽땅 변함이
필연인 것을
박부민 국장 nasaret212hanmail.net
[햇빛편지] 십일월_박부민 편집국장
십일월
산보다 먼저 영혼에
단풍이 드는 건
누군가의 감사 편지가
우편함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십일월이 소나무보다 단단한 것은
홀가분한 차림에
11이라는 두 다리로만
함께 버티기 때문이다
하늘의 종소리를 듣고
귀향하는 행렬처럼
착지하는 새들의 깃털
거기 스미는 따스한 노을
밥 연기 덮으며 눈구름 밀려와도
마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