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묵상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묵 상
깨어나 불을 켠다
탁자 위엔 성경, 칫솔, 안경, 펜,
기도요청서들
양치를 하고 앉으니
말씀의 향기가 입 안에 고여
부끄러운 허언들이 휴지통에 쌓인다
손 떨며 안경을 문지르는
새벽, 내 사명의 지평은
한 꺼풀 더 밝아질까
흐릿한 시력도 되살아날까
무릎 꿇고 가슴 조아리며
누군가를 위해
눈...
|햇빛편지| 골방의 추억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골방의 추억
엄동의 쓰린 눈망울도
맑은 기억이 되리
눈바람 거센 날엔
풀처럼 골방에 낮아져
무릎으로 사는 법 다시 배우네
산록의 짐승들 울부짖고
잿빛 골짜기 해가 돋아
온몸이 전율하며 되살아나리
생수 한 사발 들이켜
생피 돌듯 새 마음으로 일어서면
눈 녹은 언덕에 긴 종소리
강물 따라 꽃잎은 흩날...
|햇빛편지| 손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손
그 겨울,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렸네. 졸아든 북어포, 흐린 핏줄의 샛강을 따라 한 세기를 건너온 살갗의 흰 눈이 목숨을 버리고 있었네.
아득한 날부터 개펄과 황토와 신 김치와 가마솥과 장독들, 군불과 그을음과 땡볕과 비바람과 눈보라의 친구였고 내 눈곱, 눈물, 콧물, 뒤까지 닦아 주던 손. 팡이 슬어 탈색...
|햇빛편지| 빈 들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빈 들
하늘에 붙박여 땅을 떠받든
춥고 고달픈 밑동들
빈 들이 감싸 안은 온기로
뼛속 산그늘을 다 녹인다
돌연 몰려드는 까마귀 떼
얼부푼 꿈에 금을 그으며
쓸쓸한 마을을 할퀴고 달아나지만
이른봄까지 쉬 뽑히지 않는
질기고 생생한 영혼들을 품고
내내 깨어 있는 빈 들
칼바람 살 저미는 어둠 속
성에...
|햇빛편지| 크리스마스 카드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크리스마스 카드
눈이 쌀밥처럼 내리던 12월. 형과 함께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곤 했다.
모아둔 동전들을 털어 내자 근처 전파사의 캐럴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사도 잘 모르는 징글오도바이를 타고 실버벨을 목청껏 울려 대며 잿빛 거리를 짓달려 가면 형형색색의 장식품들이 가득한 문구점이 우리의 동전을 향해 입을 쩍 벌...
|햇빛편지| 청풍호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청풍호
고요 속에는
아픔이 스며 있다
아픔은
호수를 좋아한다지
슬몃 돌아 나오는 잔물결이
가슴에 찰랑이는 사람은
첫눈과 함께
여기서 홀로 깊어진다지
산 그림자에 맑은 노래를
띄우는 그대
발 시린 새들을 기르며
젖은 고요를 품은
따스한 입김 한 자락
갈숲 떨리는
푸른 마을에
긴 숨소리 자욱하...
|햇빛편지| 눈을 들라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눈을 들라
눈을 들라. 눈을 열어 바라보라. 하나님의 작품을.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하나님 나라의 높은 가치를 향해 살라고 푸른 하늘을 주셨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하늘은 더 선명하고 높아진다. 싸늘한 땅을 따뜻하게 바꿀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리시려 햇살을 주셨다. 자신과 세상을 씻어 맑게 하라고 바람을 주셨다. 제자리를 지...
|햇빛편지| 어느 날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어느 날
숲,
길이 보인다
고요와 그늘과 햇빛
바람,
씻는다
손, 얼굴, 가슴, 영혼 순서로
호수,
발걸음 소리들
아픈 이들이 참 많나 보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햇빛편지| 산책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산 책
단풍 숲에서
아내와 아들의 뒤를 따라가는데
구멍 뚫린 낙엽 한 장 말을 건넨다
상처 난 몸을 햇살 쪽으로 뒤척이고는
어렵사리 바스락,
하며 꽤 아프다고 한다
그래, 너도 한때의 초록을 그리며
나무의 긴 월동을 위해
이 낮은 지점에 도착했구나
너를 주워 책갈피에 넣으면
그 흔한 낭만은 되겠지만...
|햇빛편지| 별이 빛나는 밤 _ 박부민 편집국장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햇빛편지
별이 빛나는 밤
별은
날마다 날아와 지상에 꽂힌다
거센 가속도로 불붙은 갈기가 나부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다운 별똥별이라지만
세상을 깨우러 오는 전령인 줄은 알지 못한다
그런 서늘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