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묵상-박부민 편집국장
묵상
이끼 낀 나무에
기대어 눈을 뜬다
해거름
야윈 내 그림자 데리고
먼 길 돌아 나오는
숲 바람
큰고니 날개로
물 위를 스치며
딱 한마디
쓰고 가신다
잠잠하라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햇빛편지] 강아지풀_박부민 국장
강아지풀
청색 산그늘에
불 켠 네 마음 알아
빛은 아직
가는 실핏줄로
숨 쉬고 있음을
흔들려 봐서 알아
기댈 곳 없을 땐
하늘이 더 가까이
내려온다는 걸
바람 센 날
눈송이 등불에
날개 적시며 강을 건너는
가족들은 잘 알아
너의 솜털이 떨며
겨울을 품고 있음을
박부민...
[햇빛편지] 담쟁이_ 박부민 국장
담쟁이
푸르른 날
애타게 그려 내던
꿈은 여러 갈래였네
화폭 까칠할수록
더 단단히 가슴 붙여
옆으로 위로
기를 쓰며 번져 가던
핏줄이여 강물이여
화산처럼 타오르다
해거름 찬바람 속
몇 점 불티를 매달고
소담히 한 작품을 마치니
처마 끝 영롱한 고드름
선물로 주시네
마른 광야에 엎드려
...
[햇빛편지] 저녁 강_박부민 국장
저녁 강
그대 눈망울 속 강물
강물 속 고요
고요히 내리는 햇빛
저물고, 떠오르는 추억
추억에 긴 바람
젖은 등불 몇
잠시 떨다 춤추며
우린 아직 땅에 살고
지평선 위로
타오르는 별꽃
그대와 내 발자국
사라져 아스라이
하늘만 남는다
그대 눈망울 속 구름
구름 속 고요
고...
[햇빛편지] 가을 –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가을
힘겹게
흔들리며
긴 둑길 걸어 와
내 안에 물드는
그대
푸른 눈시울
오래 깊어지는
하늘 가까이
불빛 내음 가득
찰랑이는 날들
말없이 짙어가는
우리여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햇빛편지| 빵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빵
흰 가루 안개 속에
짓눌리다
눈물 질척인 우리
끈끈한 삶을 치대며
둥글게 혹은 모난 채
바닥으로 몸을 낮추었다
꿈이 숨쉬는 발효의
긴 터널을 지나
살짝 부푼 아침이 올 때
뜨거운 햇살을 입고
속 깊이 무르익던 시간들
포플러의 붓질로
노을빛 윤을 내면
알록달록 단풍이 들고
눈부신 설탕 눈도...
|햇빛편지| 그 여름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그 여름
비바람 몰려와 유난히 긴 아픔이었다
릴케는 '지난 여름이 위대했다'고 했다
허나 그 여름은 참으로 위태했다
우리는 고립의 섬에 박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전염병의 파도에 몹시 떨긴 했지만
변변찮은 사랑이나마 쓸려가지 못하게
애써 붙들며 불을 지폈고
스러지는 고목의 매미처럼
폰과 SNS에 달라...
|햇빛편지| 소등섬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소등섬 小燈島
남은 햇빛을 모아
작은 등불을 든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이렇게 꿈 하나 켜고
고요히 숨쉬는 일인데
시리도록 날개를 떠는 새는
노래를 접고서
어둑한 집을 쉬이 떠나려 한다
그러지 마라
저무는 것은 저물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빛을 향하라
푸른 저음이 물밑에서 울리고
깊음으로 가는 길이...
|햇빛편지| 기대는 것들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기대는 것들
자꾸만 내게 기대는
구절초
강아지풀
복슬이
영촌 할매
그리고
아내
바람이 부니까
기댄단다
귀찮아 말거라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
|햇빛편지| 오르자 _ 박부민 편집국장
햇빛편지
오르자
더 가보자, 지치도록
애써 오른다 생각 말고
산이 길을 내어 점점
낮아져 준다 여기며
한 걸음씩 발을 얹어 보자
가보면 쉴 곳도 있지
아슴한 정상엔
힘 닿으면 오를 테고
젖은 얼굴로 저 바람 퍼덕이는
등성이에 잠시 깃발로 나부끼다
참았던 껄껄 웃음 터뜨린 후
헹궈낸 가슴 속 궤적을 되짚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