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노을 바다_박부민 편집국장
노을바다
평안은 해질녘 바다를 닮았네
때로 고독을 품어
잔잔히 물결져 오거나
수평의 힘으로 노을을
멀리 늘이기도 하지
갯가에 오래 있으면 온몸이
따뜻해지는 게 이 때문이네
꿈으로 채색하고
가는 다리로 바람을 견디며 선
물새의 젖은 깃털을 봐
눈물인지 땀인지
푸른 별들이 무늬져 있어
그는 고향에 막 도착한 걸까
떠나려는 ...
[햇빛편지] 색깔 놀이_ 박부민 편집국장
색깔 놀이
보라, 눈 시린 새벽 지나 뒷동산 눈물 머금은 여린 코스모스 아껴두고만 싶던 일기장의 비밀한 갈피
노랑, 따스한 언덕 위 너랑나랑 살갑게 살자며 한 바퀴 날아 귓등에 살랑살랑 날개 접은 사랑
빨강, 지독한 햇덩이 불러 가슴 복판 아리게 태우고 충혈된 목숨에 땀 뻘뻘 현기증 한 움큼 먹이지
파랑, 파도치는 핏줄에...
[햇빛편지] 피고 지고-박부민 편집국장
피고 지고
꽃 피면
꽃잎들 환히 웃으면
마음에 꽃 지는 사람
더 슬프네
봄바람은
그리움을 실어 와
하늘을 온통 바닷물로 채우네
피고 지고
지고 피고
꽃 지면
꽃잎들 분분히 흩어지면
사랑에 꽃 피는 사람
더 아프네
봄비는
서러움을 데려와
땅을 온통 눈물로 적시네
지고 피고
...
[햇빛편지] 무리_ 박부민 편집국장
사진/ 오병이어 현장 - 영화 <더 바이블> 중에서
무리
그 산에서 오병이어로 배불렀을 때 우리 무리는 번들거리는 얼굴로 히죽이며 할렐루야를 외쳤지.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곧 왕이 되어 큰일을 낼 거라 기대했지. 그는 무리를 돌아보며 말했지. 너희가 나를 따름은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유월절이 다가와 우리는...
[햇빛편지] 봄비- 박부민 편집국장
봄비
꽃 피는 속도 따라잡으려
자전거로 벚꽃 터널을 달리는데
급할 거 뭐 있나
한사코 천천히 걸어가자는 봄비
산천의 꽃을 깨워 해처럼 웃을 때까지
느릿느릿 둑길을 적시다
가슴 밑바닥 한참 두들기더니
벚꽃잎 두 장 짓무른 눈에 붙여 주네
파스텔 물안개 마을
비와 자전거가 멈추네
젖은 바퀴 말리며 따순 ...
[햇빛편지] 햇빛 골짜기-박부민 편집국장
햇빛 골짜기
밤을 견딘 것들은
대체로 온몸이 젖어 있다
숲 깊이 맑은 눈물 풀어
서로를 씻어 주기 때문이다
눈구름 앓던 능선이 등을 펴
남은 어둠을 마저 벗어 내자
징소리로 회오리치는 긴 산울림
새들은 솟구쳐 날고
흉터마다 안개를 덧바른
산의 근육이 푸르르 꿈틀댄다
벼랑에서 너덜겅
얼음 녹은 자드락...
[햇빛편지] 발톱 깎기- 박부민 편집국장
발톱 깎기
방바닥에 주저앉아 발톱을 깎는다
깔아 둔 신문지 세상사 위에서
살과 껍질의 경계가 모호하고 아프다
지킬 것과 버릴 것을 여태 구별 못해
쓰걱쓰걱 선 작두질로 피를 보는 대낮
성급히 뜯긴 살들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책장 밑으로 달아난 발톱들이
먼지 속에 실눈 뜨며 비웃는다
웅크린 허리가 ...
[햇빛편지] 겨울, 신도시- 박부민 편집국장
겨울, 신도시
숯덩이 같은 아파트 단지
남은 불씨 몇 개 창문에 깜박인다
흐린 변두리 어디쯤 쏘다니다
콘크리트 벽에서 자맥질하는
믿음, 소망, 사랑이며
닳아진 말들을 애써 달래는 밤
어둠의 뿌리를 끝끝내 물어뜯는 불빛에
바람 그치고 꽃 눈 내려
하얗게 새벽이 열린다
횡단보도 건너올 봄...
[햇빛편지] 눈 – 박부민 국장
눈
하늘이
흰 눈물 씨를 뿌린다
뿌린 만큼
땅에 꽃눈이 트고
나머지는
어둔 밤 별이 된다
바람에 할퀴여
쩍쩍 갈라진 마을
언 강바닥 숨죽인
단단한 꿈들이
깨어나 뭉친다
등불 심지를 키우고
함께 견디는 시간
구름 휘장을 걷어 낸
별들은 내려와
골목마다 돋아나는 봄을
다시 빛으로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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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편지] 소읍편지 – 박부민 국장
소읍편지
터미널에 눈발 날리고
추위와 역병으로 서로 멀어지는 날
낯선 새해, 시골 버스 힘없는 얼굴들
이런 날엔 하얀 고향집을 생각하거나
고요한 산기슭 예배당에 앉아
종일 기도하고 싶다. 눈물겹게
아픔을 덮으며 내리는 눈송이 헤아리며
눈과 눈 사이 적막한 공간을 달려
옛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