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과 공의로 구현되는 통치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예수님의 통치하심은 영원하며 다른 모든 것들 위에서 가장 높임을 받으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훌륭하게 구현하신다. 다윗 왕국의 왕들과 같이 불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분이 아니며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왕으로 인정을 받은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곧 하나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것은 예수님의 통치가 전전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이 사실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바울 사도는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히 1:8)라고 선언한 바 있다.
나아가 예수님은 주와 창조주이시다. 예수님은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친히 손으로 지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새로운 나라를 친히 세우시는 분이다. 그 새로운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특히 시편에서 시온의 회복과 더불어 세계 열방이 여호와를 경외할 것이라는 선포는 제2의 출애굽을 통해 건설될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예수님에 의해 구현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시 102:15-16)는 시인의 선포는 여호와의 임재와 함께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시 102:17)고 함으로써 예수님을 통해 왕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구현될 것을 계시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공평과 공의로 구현된다. 때문에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회원이라면 바로 공평과 공의로써 우리의 특성을 나타내어야 한다. 요즘 우리 주변의 상황은 소통의 부재라는 말로 대치되고 있다. 그러나 소통의 부재라는 말은 공평과 공의로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공평과 공의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통치 그 자체이다. 우리들로 인해 그 누구도 예수님의 공평과 공의로부터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