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66)| 고독한 몰입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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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몰입 신명기 4:5-6

 

< 정창균 목사, 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교회 지도자들에겐 영웅적 거동, 대중의 인기 필요 없어”

 

 

근래에 이런 저런 사고를 치며 교회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두고 비판과 조롱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언론기관에서는 대형교회들이 보여주는 작금의 사태들은 80년대 중반부터 고속 성장을 경험한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겪는 ‘성장통’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성장통도 아니고 권력투쟁도 아닙니다. 교회의 세속화가 몰고 온 참상일 뿐입니다. 목회와 목회자의 세속화가 몰고 온 필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세속화의 가장 큰 축은 자기 중심과 실용성입니다. 온갖 비리와 독재와 반인권적인 일을 하면서라도 일단은 잘살아보는 것을 지상목표로 밀고 나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던 정치현실에서 한 수 배워 그것을 그대로 교회에 도입하여 개교회주의와 성장제일주의 목회로 큰 재미를 보다가 이제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수준과 도덕수준이 교회 안팎으로부터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상황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사자를 보내신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를 고민하다가 문득 엘리야가 떠올랐습니다. 엘리야는 특이한 시대 상황 가운데서 특이한 방식으로 등장하여 사역한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가 등장하는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폭로하는 열왕기상 16장은 이스라엘 왕들의 죄목을 고발합니다. 그들의 죄목은 언제나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저들이 범죄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저들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였다는 이 지적은 참으로 무서운 고발입니다. 지도자의 위험과 무서움이 이것입니다.

 

그 시대는 아버지 왕과 아들 왕이 대를 이어 신기록을 갱신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없는 그런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여호와의 사자” “언약의 사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우리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말 3:1; 4:5-6). 참으로 제대로 된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한 시대에 엘리야는 그렇게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사자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며 살아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왕권에 정면으로 저항해야 되는 위험을 수반하였고 그 시대, 그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삶의 흐름을 거역해야 되는 무모함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왕권에 정면 도전하는 반체제 인사요, 온 나라에 비가 오지 않기를 구하고 그 저주를 쏟아내는 반민족적이고 반국가적인 반동이요, 그 나라의 주류 종파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독선적 배타적 종교 운동으로 종교간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인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시대의 주류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되고 배격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사는 이유는 그것이 그 시대에 여호와의 사자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혼자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영웅적 거동도, 대중의 인기도 그에게는 없습니다. 아니 그가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권력으로부터도, 종교지도자들로부터도, 여론으로부터도, 심지어 같은 편이 될 것이라 기대함직한 백성으로부터도 그는 배척당하고 소외당하며 길을 가야합니다.

 

그는 스스로도 마치 세상에 자기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는 고독한 길을 가도록 보내진 사람입니다. 그는 단 한 가지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한 곳으로 가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삽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에 몰입할 뿐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그에게 많은 모험과 위험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현실적 고통을 짐지게 합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는 하나님 여호와에게만 몰입합니다. 하나님을 사용하여 자기의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데 몰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그는 멋진 후계자가 자기를 잇는 것을 목격하며 산채로 하늘 하나님께로 올리워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자기의 사자를 보내신다면, 그는 아마도 엘리야와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최고경영자의 안목에서 나오는 성공을 위한 방편이 됨직한 온갖 것에 대한 현란한 관심으로 분주한 이 시대의 목회자들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고독한 몰입일 것입니다.

 

교인들은 소위 영적인 지도자들에게서 그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기도 범죄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도 범죄케 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는 지도자로 한 시대를 사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이제라도 목회자가 목회자답고 신자가 신자다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교회가 교회 다와 지는 일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 사회가 지금과는 달리 교회를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길만 집착하며 가는 ‘고독한 몰입’이 모든 해결의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