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하나님 증언하기
십계명
스텐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복있는사람
2007년, 218면
“십계명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삶의 교본”
미국의 어느 판사가 자신의 법정에 십계명을 걸어놓으려다 반대에 부딪쳐 그
만 둔 일이 있다. 자신의 법정에서 집행되는 법이 하나님의 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려 했다.
십계명은 일반 윤리개념 넘어서
하지만 그의 행동은 십계명의 정당한 위치를 분명히 놓친 처사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결코 하나님 예배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다.”
이라는 원 제목도 그것을 지시한다. “하나님은 십계명 속에서 끊임없이 우
리에게 오시고, 우리 역시 그 계명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 말은 십계명이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
다는
뜻이다. 그래서 값없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십계명이
결코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들에게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말씀은
될 수가 없다. 단지 도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십계명은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사회가 되어야 할지를 지시하는 하나님의 말
씀이다. 교회는 거룩한 사회다. 여기서 ‘거룩하다’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아주 탁월하다는 뜻이 우선적이지 않다. 하나님을 인정한다,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의미가 더 우선한다. 그래야 교회가 이 세상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문
화를 갖는다. 1-4계명이 요구하는 바가 바로 그 점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
을 만들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
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계명들이 요구하는 바
는 무엇인가. 하나님 예배가 아닌가.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아닌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만 요구되는 삶의 내용이 아니
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는 바이다.
그래서 십계명은 종교의 영역에서 윤리의 영역으로 나아간
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사회가 어떠해야 할지를 지시할 때 하나님께만 고정시키지 않는다.
나와 늘 곁에 있는 이웃을 바라보게 한다. 5-10계명이 정확히 그런 도덕 내
용이다. 그렇다면 십계명이 개인 수양의 차원의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너’를 대접할 때 ‘나’의 나 됨을 결실케 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너’를 배제한 채로는 결코 기독교 사회 윤리는 실천될 수가 없다. 우리
는 이 교훈을 2007년 이랜드 사태에서 정확히 확인한 바 있다.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서는 결코 설 수 있는 구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러한 경제 구조가 우리의 욕망을 한껏 부추긴다. 그 욕망은 무질
서한 것이다. 어느 누구라고 이 탐욕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마지막 계명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른 어느 계명보다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성경은 탐욕을 우상숭
배라고 정죄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하나님 예배는 종교의 영역이 아닌 윤리
의 영역에서도 강하게 요청되는 삶의 내용이다. 우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명
분 아래 내 안에 탐욕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
보아야 한다.
서구 사회는 우리보다도 훨씬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려온 사회다. 이
러한 그들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자신들의 삶 전 영역에
서 하나님을 철저히 몰아내지 못해 절치부심한 사회였다. 이런 세속화 작업
이 그들의 문명사적 과제요 사명이었다. 학자나 문학가나 예술가는 물론이
고 신학자들조차 그 일에 혼신을 다해 몰두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신에 버
금가는 자유를 구가하는 근대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
토록 자랑하는 근대적 특징이다.
하지만 십계명은 우리에게 이런 근대적 인간형을 추구하라고 요청하지도 않
는다. 불교나 유교를 통해 빚어지는 전통적 인간형도 추구하라고 하지 않는
다. 그것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하라고 요청한다. “십계명은
인류 전체에 주어진 지침이 아니다. 십계명은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누구
의 소유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현세의 문화에 대항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삶
의 방식이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명확히 해야
십계명을 오늘의 언어로 이렇게 탁월하게 해석해 낸 글을 찾기 어려운 시대
에 본서는 나의 지성에서
상당한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조주석 목사_합신출판부편집실장
chochuse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