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어머니_이종호 장로

0
43

어머니

이종호 장로 (대구영안교회)

 

어머니! 베란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아침, 탐스럽고도 아름답게 피어났던 선인장의 붉은 꽃잎이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늘어진 꽃잎은 왠지 모를 슬픔이 가슴을 파고들게 하며 세월의 훈장처럼, 파편처럼, 검버섯이 피어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생은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고 외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태어남과 나이 듦, 병듦, 그리고 죽음의 문제로 깊이 고민하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 등이 세월이 흰 눈 되어 내려쌓인 어머니의 흰머리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유랑극단의 줄타기 곡예사처럼 외롭게 세상의 무대 위를 걸어오신, 껍질만 남은 나의 어머니. 머지않은 세월에 시들어버린 선인장의 꽃잎처럼 당신은 영원히 뒤돌아보시지 않으시고 우리 곁을 훌쩍 떠나 버리시겠지요? 시작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삶의 중간지대를 지나가고 있는 저에게, 천박함과 막막함, 난처함과 좌절감, 그리고 불확실함과 생경함으로 날마다 무너져 내리는 저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시고 먼 길 허허로이 떠나시겠지요. 왠지 모른 눈물이 자꾸만 얼굴을 타고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저의 눈물의 샘이었습니다.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당신의 처절한 삶은 언제나 제게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까요.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어 세상을 알아가면서부터 어머니 당신은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으며 고단했지만 고단하지 않으셨던, 그래서 미운 것, 고운 것 녹여내어 웃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시는 당신은 힘든 세월의 질곡을 걸어오셨지만 자존심을 아시는 분이었고 꼿꼿함도 아시는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언제였던가요? 당신의 반지를 집사람 손가락에 꼭 끼워주시고 떠나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한솔아, 아람아! 할머니 떠나면 너희들은 좋겠지?”라고 말씀하시는 당신의 이야기에도 두고 떠나야 할 당신의 깊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다신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라며 울먹이는 한솔이를 보며 대견해하시던 모습 속에서 찬바람 이는 가슴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이 나이에도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고 싶은 생각은 왜일까요? 간지럽다 하시면서도 은근히 속옷을 올려주시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당신이 가신 뒤 당신이 보고 싶어지면 어머니 계시던 방문을 열고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를 외칠 수 있겠지만 젊은 저희들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여 늘어놓으시던 어머니의 잔소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작은 체구, 힘없고 불편하신 다리를 끌고 다니시는 볼품없는 작은 체구지만 당신은 위대한 거인이며 우리 모두의 즐거움과 행복과 눈물의 태입니다. 떠날 수밖에 없겠지만 떠나보낼 수 없는 저는 오늘도 주님 안에서 당신을 보내드릴 이별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