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치를 떠는 정도가 되었으니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주의적인 삶을 표상화 한 것이 곧 예배이다.
예배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감복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
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서 예배는 결코 주술적인 성격을 띠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예배 행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배는 어디까지나 온전
한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내 자신을 신령과 진리로(요 4:23-24) 드리는 것이
지 무엇을 더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며 그 삶의 모
양은 전폭적으로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뢰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떠맡긴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모든 삶의 모양과 내용
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삶이다.
이 사실을 잘 지적한
구약의 선지자가 아모스였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II세 때 외부의 침략이 약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 치레의 예배만을 일삼고 하나님의 말씀 행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생활을 윤택하
게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암 8:5-6).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기본적
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궁리만을 일삼고 있었
던 것이다. 그러한 악덕 행위가 얼마나 심했던지 땅이 치를 떨고 있다고 아모
스 선지자는 지적하고 있다(암 8:8). 그들이 일삼는 것은 뇌물을 받고 의인
을 정죄하며, 가난한 자를 멸시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즐기는 음
란, 신성모독의 잔악 무도한 일 등으로 악을 행함에 있어 서슴지 않고 담대하
였다(암 2:6-8).
하나님께 향한 참된 예배는 먼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와 법도에 따라 사
는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이방 종교에서는 자신의 부도덕과 불의와는
상관없이 신에 대한 예식만 치르는 것으로 훌륭한 예배가 될지 모른다. 하지
만
하나님 앞에선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삶 그 자체가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
님 앞에서 순결하지 아니하고서는 어떤 예배도 불가능한 것이다.
의인을 의인으로 인정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불의와 탐욕과 음란과 사악
함을 떠나 정의가 구현되는 삶에서부터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다. 내
삶이 불의하다면 아무리 고결한 예식을 갖춘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예
배를 가증하게 여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