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 때 두 천사가 소돔 성에 이르렀다. 그들을 알아본 사람은 마침
성문에 앉아있던 롯이었다. 롯은 두 천사를 보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며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
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라며 청했다.
그러나 두 천사는 롯의 청을 거절하며 거리에서 그 밤을 지내겠다는 의지
를 밝혔다. 두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에 심히 젖어들어 있어 그
사실을 심문하고 심판하기 위해 그 성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그 밤을
거리에서 지내며 소돔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유심히 살피려 했던 것이다.
롯은 그러한 천사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두 사람의 행색이 여느
사람 같지 않고 존귀해 보였고, 롯 자신 역시 소돔에서 사는 동안 악한 소
돔 사람들의 행위로 인해 심고를 겪고 있던 차 그들을 귀하게 여겨 집으로
맞이하여 들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인물을 알아보는 롯의 안목은 소돔 사
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상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반면 소돔 사람
들은 외부에서 두 사람이 성안에 들어와 롯의 집에 머문다
는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롯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롯을 불러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相關)
하리라”(창19:5)고 하며 야단법석을 피웠다. 그들의 죄악을 심문하고 심판
하러 온 천사들을 알아 볼 안목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그 밤이 지
나면 철저하게 그 성과 함께 멸망 받을 위치에 서 있는 자신들의 위기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밤이 지나면 그들이 그동안 애써 지켜왔던 그 모든 재화와 명예가 한
줌 잿더미로 변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들과 친척들이 함께 그 자
리에서 멸절 당할 수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단지 자
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처럼 열화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동
이 터 오를 무렵이면 소돔 성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 마지막
밤에 그들은 욕정에 굶주린 짐승처럼 온 성안을 소용돌이치며 다니고 있었
던 것이다.
얼마 전 터어키에서 강한 지진으로 인해 1만 5천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
다. 그 전날 밤 과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죽은 자들을 안쓰러워
하는 가족, 친지들의 아픔은 또한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런데 정작 안타까
운 것은 그런 현실을 눈앞에 보고도 내일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
지 모르겠다. 소돔 성의 전야처럼 우리의 눈이 어두워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