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만 있고 이성은 없다.
최근 일어난 대전 법조 비리 사건으로 불거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검찰이 거듭날 기회로 삼아
야 한다는 소장 검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법조 비리 사건은 법조계의 비리를 척결하지 못
하고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사를 받고 있던
모 고검장은 검찰이 정치의 시녀에 불과하다고 힐난하고 나섰다. 초유의 항
명 파동이라고 불리어진 그의 성명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은 변하지 않
는다고 꼬집고 있다. 이번 기회를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소장 검사들의 파문 역시 3월에 있을 인사 이동과 연관되어 사그라
지고 마는 느낌이 든다.
한편 지난 1월 21일부터 31일까지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1999
년 선댄스 영화제는 한 사람의 동양 여성에 의해 발칵 뒤집어졌었다. 고프
루이스 감독이 출품한 다큐멘타리 ‘섹스, 애너벨 청 이야
기’의 주인공인 그녀
가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영화는 엄격한 통제 사회인 싱가포르
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그녀의 삶과 나이 스물에 미국에서 포르노 배우로 변
신한 그녀의 삶을 극단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심지어 10시간 동안에 무려
251명의 남성과 정사를 가진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그
녀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사회의 위선을 통째로 뒤집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일어협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황금 어장을 눈앞에 두
고도 어부들이 출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일로 한일 양국 어선단들이 하
루에도 수천만, 수억 원의 손해를 그대로 감수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단돈 몇백 원어치의 음식을 먹지 못해 죽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건들의 내면을 보면 한결같이 명
분 싸움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법조 비리는 법조 비리대로
해결하고, 정치 검찰 문제는 그 책임을 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고,
검찰 독립은 그 관계 법령을 개정하는 당국이 나서 해결해야 한다. 그 와중
에
서로를 물고 놓지 않는 것은 바른 해법보다는 자신의 명분을 앞세우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에너벨 청이 제시한 사회의 위선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거치며
정치라는 수단을 통해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
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
조악을 기이한 행동으로 파헤쳐보겠다고 나서는 것 역시 자기의 명분을 앞
세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지금 유명 스타가 되어 최고의 주가를 누리
고 있다.
이 모두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폄하가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문제들이 돈만 있다면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명분을 앞세우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교회는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슨
명분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