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자에게 드리는 글
L형.
지난 여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잔인했습니다. 400여명의 인명이
손실되었고 14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수재의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이었습니다. 재산상의 손실은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통계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수재민과 국민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감과 손실감이야 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재앙이 우리 국민과 교회들 저변에 깔려
있는 무사안일한 사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 없습
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기상 이변과 재앙은 세기말에 정신
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헤이해진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한 하나님
의 심판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L형.
더 심각한 문제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통으로 삼킨다는 말씀처
럼 인간 내면에 담긴 죄감(罪感)이 무디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곳곳에서 홍
수가 나고 산사태가 발생하고 하
루에도 수십명이 죽어가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의례히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구나 하고 담담히 넘겨버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 대통령의 스켄들 사건도 자주 접하다 보니 사실을 해명하기 보다는
그렇고 그런 일인 것처럼 넘겨 버리게 됩니다. 그간 몇차레 발생한 폭탄 테
러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에 가슴 아
파하기 보다는 또 사건이 터졌구나 하는 정도에서 넘겨버리고 맙니다. 그만
큼 우리는 양심이 무디어진 세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태를 어떻
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러고 보니 L형이 지적한 말이 생각납니다. 기독교개혁신보가 과연 개혁
을 지향하는 자리에 서있는지 궁금하다는 우려 말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을 빌리면 “이건 이름만 개혁 아니예요?粹遮?걱정에서 우러나온 충정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고해주시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기독교개혁신보는 이미 알고 계시듯 “바른 교회, 바른 신학, 바른 생활袖?
라는 개혁 정신에 입각해
편집되어집니다. 이에 걸맞도록 바른 교회관 정
립, 바른 신학에 대한 이해, 바른 생활을 향유하기 위한 문화관 재시 등 다
양한 형태의 편집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은 신문으로서의
체제가 있기 때문에 신문이라는 모양새를 근거해야만 합니다. 이점은 L형
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체제와 내용의 긴장 관계에서 균형 감각을 어떻
게 유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편집의 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문의 특성상 모든 기사를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독
자들의 취향에 따라 각기 읽고 공감하는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
는 낙타를 통으로 삼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편
집하는 이로서 늘 가슴으로부터 질문하는 고뇌임을 알아 주신다면 더욱 고
맙겠습니다.
그럼 L형이 주 안에서 더욱 강건하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합니
다. 좋은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