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은 하나님의 구속을 믿는 것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구약 시대의 부활 신앙은 시온이즘의 완성이었으며 낙관론적 종말론과 함께 내세에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을 것이라는 신앙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현세와 내세 사이에는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성취될 구속이 절대적이었다. 이 구속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된다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내세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의와 불공평한 이 세상의 고난과 고통은 그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의한 자들에 의해 의인들이 공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진 자들의 포악이었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늑탈하고 회유하면서 여전히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은 가진 자들의 횡포에 아무런 항거를 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시편 기자는 세상의 불의를 향해 단호하게 외친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6-8).
일반적으로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영화와 영광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만일 그들의 재물이 자신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오만하게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자만이 참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는 것은 언약을 통해 주신 약속이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시 49:15)라고 노래한다.
이 시인의 독백은 결코 무력하지 않다. 비록 가진 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선포는 귓등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을 바라보는 시인의 가슴속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감격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 음부의 권세로부터 의로운 자들을 구속하신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부활 신앙의 극치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