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과 일상에 주는 하나님의 도전을 보라!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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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과 일상에 주는 하나님의 도전을 보라!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때로 오해 받더라도 죽어나가는 것에서 신자의 본질 찾아야

 

 

겨우내 까치둥지 안에만 갇혀있다 보니 답답함이 느껴져 밖으로 나와보니 교회안 보다 바깥의 봄바람이 더 훈훈하다. 세상의 소리는 경제가 어렵다 하고, 정치 쪽을 바라봐도 원칙도 소신도 없는 듯이 보인다. 북핵문제로 정국은 어지럽고 더 혼란스럽다. 

이러할 때 우리 신자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봐라보아야 하는가?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흩어지면 흩어지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살아가는 길은 없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되고 내가 당선이 되어야만 하고, 내가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들 한다. 내가 교회를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오로지 성공과 승리위주의 문화와 가치만 존재할 뿐, 이해하고 용납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사회 구성원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비정하기 그지없는 무서운 시대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어느 시대에 태어나 어떤 정치, 어떤 경제적 조건 속에 있었는가? 어느 부모 밑에서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는 별 차이가 없다. 그것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담아내려는 컨텍스트일 뿐이다.

우리는 유능하고 흠 없고 진실하고 헌신적인 조건에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를 담아내는 주인공일 뿐이다.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으로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모르면 현실을 인과응보로만 이해하게 되어 ‘잘 하면 복 받고, 못 하면 벌 받는다’는 고정관념으로만 가기 쉽다. 물론 이 틀은 하나님의 공의에 속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무엇이 진전되고 무엇이 성취되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배역과 지위가 다르고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때로는 약속된 부활이 오기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고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책감마저 든다. 꼭 모르는 길을 걷는 것만 같다. 신앙생활의 막막함이 상승곡선은 없고 하강곡선으로 치닫는 것만 같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조용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숨결은, 할 만큼 했는데도 가서 죽으라는 것으로 다가온다. 보람과 기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충성과 인내의 자리를 요구하신다. “뭐 이런 것이 다 있나?” 싶은 것이 정상이고, 분명하고 확신에 가득 찬 것은 수상한 것이다. 세상과 인생은 성공해야만 거기에 답이 있다고 우리를 속인다. 그러나 목회하면서 아무리 봐도 그런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부활을 약속받은 자로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과 갈등이 있을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장 상식적인 미덕조차도 없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그 몇 초의 여유도 없다. 원래 얘기는 들어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무슨 얘기를 좀 하려고 하면 “그건 말이야!” 라고 하면서 단번에 말을 가로막고 만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이고, 교제가 무엇이고, 편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논리성으로만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인격과 말을 끊는다. 그 안에 미덕이나 위로나 이해가 없다. 모두가 경쟁적이고 성과적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를 자기 앞에 꿇어앉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끌어안고 가야하는 인생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일도 교회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은 아내 하나 감당하지 못해서 무서울 때가 있다. “아, 나는 뭐가 이럴까?” 그것은 부부라 할지라도 믿음이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강요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하며 죽어나가라는 것인데 일상생활을 믿음으로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은 죽음의 기간이기 때문에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때로 오해를 받더라도 죽어나가는 것에서 신자의 본질을 찾아야한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자기 식으로 확인하고, 문제가 해결 되지 않으면 펄펄뛰고 고함지르는 것은 아직도 무엇인가 많이 부족한 경륜이다. “찔러라!” “나를 죽이지 않고는 이 자리를 지나갈 수 없다!” 하며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는 겁을 먹어도 도망갈 수 없고, 핑계를 대도 도망갈 수 없는 자리에 와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는 못 살아! 더 이상은 안 해!”가 아니라 “오늘은 그만 자자! 일단 내일로 가보자!”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신자는 세상을 살면서 험한 꼴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아멘’이 안 나오는 것이 기독교이다. 그러니 항상 서로 힘을 내야한다.

우리 교단은 타교단에서는 훌륭한 교단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정작 우리 안에서는 자존감과 기쁨이 없다. 남에게는 훌륭하게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허망한 길을 걷고 있다. 우리 교단이나 교회는 다른 교단보다 외부적 행사나 활동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고 적적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쓸쓸함과 외로움을 잘 이겨내야 한다. 

박영선 목사님의 “모든 인생과 일상에 주는 하나님의 도전을 보라!”는 한 줄 평 처럼,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인생과 일상에 주시는 하나님의 도전을 바라보면서, 다만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전부인 이 세상을, 하나님이 주신 도전과 은혜로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현실을 더 부요하고 멋있게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