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목자가 보내는 가을의 편지_박찬식 목사

0
202

이 가을이 나에게 풍성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가을을 체감하게 하옵소서!

박찬식 목사(찬양의교회)

 

창밖은 온통 가을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정원에 가득했던 밤나무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열매 맺은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고,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손을 텁니다. 그러나 못내 아쉬움을 달래려 그대의 뜰을 찾는 이들이 꽤나 있습니다. 아름답고 풍성했던 시절을 이제는 추억만 해야 하는 그대의 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올해 찾아 주었던 이들을 내년에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절의 철칙 앞에서 나약한 모습으로 스산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대가 아름답게 입었던 옷들을 하나하나씩 떼고 있군요. 계절의 아름다움 이면에서 어김없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군요. 그대여 잘 가시구려. 그리고 내년에 다시 동장군을 물리치고 승리자로서 당당하게 연녹색의 싹을 틔워 승리하였음을 보여주시구려. 더불어 아름다운 만남과 소산의 열매를 다시금 기대하면서 그대를 보내드리려 합니다.

며칠 동안의 추위가 겨울을 예고해 주더니 연못에 있는 잉어와 붕어가 그만 갑작스런 추위에 놀랐는지 물 위로 뛰어오르지 않습니다. 어저께도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을의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을까 기대하였는데 꼼짝하지 않았지요. 아침이면 연못은 추워지는 날씨를 녹여줄 양으로 계속해서 입김을 후후 토해 냅니다. 그렇지만 이내 햇살이 퍼지면 해님에게 임무 교대를 하고 잠잠해집니다. 그리고 집요한 바람결에 맥 못 추고 자신의 앙상함을 숨겨 왔던 옷 조각들을 빼앗기고 연못에 널브러져 낙엽 되어 버린 옷들을 바라보면서 세원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아! 이제는 가을인가 봅니다. 저 창밖에 나뒹구는 낙엽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명인이 가을을 시샘하듯 비질을 하다 지쳐 이내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발로 찹니다. 저 명인도 지칠 때쯤이면, 계절에 압도되어 무수히 떨어지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입니다. 그때 그도 낙엽을 보면서 자신의 허상에 한숨지으며, 먼 인생의 여로에 자신을 던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많은 시름이 우리 가운데 많았습니다. 그 시름이 때로는 아픔으로 다가와 보좌의 쿠션을 가슴에 안고 소리 없는 몸부림으로 한밤을 지새우며 절규하듯 새벽의 여명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우울함은 아름다운 그대들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사랑하는 그대들의 아픔보다 나의 아픔이 더 큰 것으로 느껴져 주님께 빨리 가기를 소원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기에 초점 잃은 듯한 눈을 부비고, 다시 그대들을 바라봅니다. 그때마다 언제나 아름다운 미소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대 곁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철이 없어 보이던지, 또 다시 나의 작아짐을 고백해 봅니다.

나의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나에게 어여쁜 존재입니다. 그대를 보면 마음이 벅차오르고 할 수만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그대와 같이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아쉬움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대와 나와는 너무도 추억이 없습니다. 올 가을에는 추억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대는 너무도 바쁘다기에, 그대는 너무도 피곤하다기에, 그대는 너무도 힘들다기에 그대를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대의 눈을 보면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시시각각 허락된 시간에 영원한 스승인 예수님이 가르쳐 준 아름다운 밀어들을 그대와 나누고 싶습니다.

그대의 모습이 어떠한들 어떻겠습니까? 이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그대와 같이하고 싶습니다. 망설임 없이 주저함 없이 그대를 보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가난함이 있어서 전능자에게 가난해질 수 없다고 하는 우리의 마음에 신실하신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 담고 싶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사색해야 할 계절에 오히려 목에 힘주어 소리 질러야 하는 그대의 아픔에,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어찌할 수 없음을 밤새워 고백합니다. 아무리 죄로 인하여 가혹하게 된 인생이라지만, 전능자께서는 그대를 향한 문을 닫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대는 언제라도 소망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대 안에 있는 소망을 당당하게 찾으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나는 당신의 상속자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나를 지으신 전능자의 모든 것을 상속하여 유업을 이을 존재입니다. 더 이상 비겁하게 있지 말고 아들이라는 신분의 확인을 통해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가을이 나에게 풍성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가을을 체감하게 하옵소서! 마음껏 부르짖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편입니다. 당신의 후견자이십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동행자이십니다. 상황 상황마다 위로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승리자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