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교단으로 옮긴 소감문] 합신에서의 1년을 보내며_최만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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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단으로 옮긴 소감문

합신에서의 1년을 보내며

성도들 전체가 동의해서
가장 복음적이고 건강한 교단을 알아보고
상담을 통해 합신 교단을 선택해

최만현 목사(믿음의 교회, 경북노회)

 

저는 불신가정에 태어나서 청년 때 군대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재대 후에 통합 교단 교회에서 신앙의 첫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주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청년부 등 모든 부서를 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철학을 공부하고 장신대 신대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신앙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느 동아리에서 진보교단 신학교수님을 초빙해서 강연회를 하는데 선배가 나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꼭 예수님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심히 두렵고 가슴이 떨리고 분노도 일어나고 해서 약 40명 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손을 들고 그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동아리 회장 되는 분이 앞자리에 앉아서 휙 나를 향해 돌아보는 눈빛이 너무나 차갑고 무서웠습니다.  나는 평신도들도 아니고 목회자가 되려고 모인 이곳에서 왜 이런 강의가 있어야 하고 그런 강사를 데리고 와서 이런 강의가 진행되어 아무도 제지 하거나 막는 장치가 아무것도 안 되어 있는가? 그리고 왜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가? 너무나 큰 갈등과 분노가 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물으면 많은 동료 신학생들과 교수님들의 답변은 ‘우리 교단은 중도 노선이다.’ ‘보수도 진보도 다 수용한다.’ ‘그래서 폭이 넓어서 좋다.’ 이런 답변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졸업 후 JDI라는 선교단체와 CCC 선교단체 훈련을 통해서 거기서 비로소 예수님의 유일성, 성령충만의 삶을 배우면서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유일성, 구원의 엄중성을 왜 신학교에서는 안 가르치나? 구원론 자체가 강의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 혼자 갈급하여 더 복음 적인 내용을 배우려고 복음적인 신학교를 찾아서(아시아연합신학대학, Th.m), 또 합동교단 친구들을(대구 나눔과 섬김의 교회 목사님)과 복음적인 선교단체를 통해서, 많은 복음적인 주제들과 책들을 귀동냥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언약신학, 구속사, 이런 단어 자체를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단체에서 배운 예수님 유일성, 복음의 확신, 성령 충만, 제자훈련, 세계선교, 예수 문화, 사랑의 문화 등을 배워, 청년부에 적용했는데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필리핀 CCC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개척을 했는데 제가 아는 것이라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신학적이고 지식적이어서 목회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유일성, 복음의 확신과 기쁨, 성령 충만한 삶, 복음 전도, 제자 양육,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것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CCC회관을 빌려서 개척을 했습니다. 곧 부흥하여 지금은 지산동으로 옮겨 와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넘치게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유일성에 대한 상처를 잊을 만하니 저희 교회 성도 중 약 10명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이유가 소속 교단이 WCC에 적극 동참하는 교단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장로님들과 교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것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진리의 문제라는 것을 가르치고, 모든 성도님들 전체가 동의해서 가장 복음적이고 건강한 교단이 어딘지 알아보고 상담을 통해서 지금 합신 교단을 선택해서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교단에서 웨민신앙고백등을 공부하면서 진보교단에서는 이 부분을 너무나 형식적으로 지나가는구나 깨닫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합신교단의 장점은 말씀을 너무나 사랑함, 모든 목사님들이 너무나 성경을 사랑하고 겸손하며 오직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려는,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려는 그 열심과 열정이 너무나 커서 저에게는 너무나 새롭게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혼란을 바로잡는 데 큰 사명을 감당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아쉬운 점도 말해달라고 하시니까, 외람되겠지만 조금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을 사랑하는 중심은 어떤 교단 보다 뛰어난데 그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의 ‘문화’를 다리로 삼아야 하는데 그 문화적 상관성, 수용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설교와 부흥의 상관관계의 연구의 결과를 보면 3종류의 설교자가 있는데 첫째는 정보 전달형 설교자(즉 지식을 전하는 자), 두 번째, 복음과 교리를 강압적으로 선포하면서 전하는 설교자, 셋째로 성도들의 삶의 변화를 목표로 설교자 자신의 변화된 삶을 오픈하여 전하는 대화형의 설교자입니다.

그런데 첫째 설교자는 가장 부흥이 안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둘째는 약간의 부흥이 있었고, 셋째는 큰 부흥의 열매를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성경과 교리를 사랑한 나머지(물론 좋은 장점입니다.) 그 지식을 ‘너무 정확하게’ ‘바르게’ 전하는데 관심과 열정을 가지다 보니까 첫째, 둘째 유형의 설교자들이 많고 세 번째 설교자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저와 우리 교회를 받아 주신 합신 모든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