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르익은 날의 추수_이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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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무르익은 날의 추수

감사의 계절, 무르익은 날의 언저리에서
나는 얼마나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며 순종해 왔는지

이은숙 시인(본보 객원기자)

 

수확과 결실의 계절, 우리 마음은 무르익은 들판처럼 흡족하고 충만한가? 하나님께 받은 은택을 잊은 채 우리가 가진 결핍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야 할 것과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삶의 세태에 순응하며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던 헛된 바람들은 무엇이 있을까 돌아본다. 어린아이처럼 미숙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상스러운 헛된 바람들에 매몰되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만족을 모른 체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얼마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으로 6학년 아이들을 지도할 때였다. 한 아이에게 ‘네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할 것 같니?’라고 물어보니 아이는 “게임을 하며 살아가면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아이의 답변을 들으며 마음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왜 삶의 행복에 대해 그토록 빈곤한 경험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어지는 아이의 말은 한 술 더 했다. “평생 공부만 하다가 죽을 것 같아서 짜증나요.” 그 아이의 말에 나는 물었다. “너는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공부만 하다 죽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아이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을 답하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사한 것들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어린 시절 처음 말을 떼면서부터 너는 엄마에게 많은 질문을 했을 거야. 예컨대 ‘이게 뭐야?’ 네가 물으면 너희 엄마는 ‘이건 다리미란다. 뜨거워서 네가 만지면 다칠 수 있지.’라고 가르쳐 주셨을 것이고. 그게 바로 공부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갈 곳에서 무엇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지, 무엇이 너의 삶에 필요한 지를 배우는 것. 네가 너의 울타리에 대해 궁금해 하면 답변을 얻는 것.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너를 불행하게 하는지 알아가는 것. 그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너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네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이 곧 배움이야. 지금은 네 바로 앞에만 조명이 켜져 있어서 온 세상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캄캄할지도 모르지만 공부를 할 때마다 켜지는 조명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과 같아서 네 앞에 펼쳐진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일, 그것이 바로 배움인 것인데 그것을 짜증난다고 너는 말하고 있는 거야.”

공부가 짜증나는 일이라는 편견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이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인 배움도 불행으로 느낀다면, 다른 사람을 돌보는 헌신과 이웃사랑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소중하고 감사한 것임을 온전히 알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고 어려움을 헤아릴 여유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생계를 걱정해야 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공부 할 수 있는 자신의 환경에 감사하기보다, 마음껏 게임하지 못하는 처지를 불행해 하는 아이는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다.

무엇을 ‘보다(figure)’라는 말에는 ‘판단하다’나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참다운 혜안(慧眼)을 얻고, 우리의 참 자아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그 혜안은 우리를 불행으로부터 건지기도 하고 삶을 진정 의미 있게 해주며, 작은 일에도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결국 배움은 무감각했던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우리를 돌보고 살리는 것보다 우리를 소모시키고 의미 없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재미와 가치를 느끼며 살아가려 하는 우리 인간의 경향성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가 공부에 대한 편견에 빠져 게임으로 자신의 삶을 소모시키는 것이 참된 행복인줄로 알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닌 우리의 삶을 헛되게 하는 일들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받은 은택들은 잊지 않기 위해 항상 우리의 삶을 말씀에 비추면서도 주님의 은혜를 등지고 위태로운 ‘삶의 게임’에만 빠져있지 않은지 가슴 서늘하게 자문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분의 지식에서 멀어져 죄에 무감각해 질 때 우리 삶의 올바른 방향과 참된 기쁨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은 오히려 올무처럼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잠언의 기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셨다. 그 말씀은 온갖 축복된 말씀이며 ‘선’으로만 가득 차 있는 말씀이다. 그 말씀이 아름다운 자연곳곳에 계시로 나타나듯, 우리 안에 충만히 살아 숨 쉴 때, 살아 운동력 넘치는 그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며 우리를 참된 만족과 감사한 삶으로 인도한다. 그 말씀 속에 생명의 영원한 약속이 있고 구원의 비밀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말씀과,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삶의 곳곳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야 말로 가을의 끝자락에 우리가 가장 사모하며 거두어야할 것이리라.

나의 삶의 곳곳에 빈 쭉정이들만이 널려 있지는 않은지 가슴 서늘하게 돌아본다.

감사의 계절, 무르익은 날의 언저리에서 나는 얼마나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며 순종 해 왔는지를 돌아볼 때 부끄러움뿐임을 고백한다. 쭉정이처럼 세상의 의미 없는 것들로 덧없는 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만유이신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고 깨끗해져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기를 소망해 본다. 정갈하게 비워지고 깨끗해진 자리에 움튼 새로운 씨앗으로부터 온 열매처럼 말씀으로 무르익는 내가 되기를.

맥스 루케이도는 그의 저서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 자리에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우리를 소망 없는 상태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참된 가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그 사실은 추수의 계절에 참으로 감격스러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