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탄생500주년기념 지상강좌 <4>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에 대한 이해
황대우 목사_고신대 교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라고 번역하면 그 주체는 우리 인간이 되지
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고 번역한다면 그 주체는 하나님이 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구호는 하나님 중심 사상을 대변하기 때문
에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모든 형태의 인간주체사상을 거부한다.
개혁주의를 간단 명료하게 정의하고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를
의미하는 “soli Deo gloria”라는 문구라 할 수 있다.
1. ‘soli Deo gloria’에 대한 이해
우리는 흔히 이 용어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로 이해한다. 물론 이렇
게 이해하는 것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위의
문장에서 라틴어 “gloria”라는 용어는 목적어가 아닌 주어이다. “
영광
을”과 “영광이” 사이에는 오늘날 개혁주의를 오해하느냐, 바르게 이해하
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라고 번역하면 그 주체는 우리 인간이 되지
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고 번역한다면 그 주체는 하나님이 된다.
전자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신자 개개인의 자세와 행동에 달려 있고,
후자로 번역하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된다.
신자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지
만 그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사실 여기서 오늘날 한
국교회가 개혁주의를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또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인 사고 방
식과 태도가 마치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양 가르치고 있다.
우선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그 내용이 대부분 긍정적인 사고 방식과 태
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의 대다수 프로그램 역시 이와 같
은 원리에서 만들어지고 구동된다. 한마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긍
정의 심리학이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 방식과 긍정의 심리학을 통해 교회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
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도를 통한 교회의 부흥일 것이다. 모든 그리스
도인들은 항상 교회의 부흥을 진심으로 갈망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
다. 그러나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
회를 부흥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있고 원해야 하는 교회의 부흥은 실로 누구를 위
한 것인가? 그 소원의 동기와 목적이 정말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필요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가?
우리 모두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
지 않는다는 것, 즉 우리의 부족과 필요를 채우고 싶은 마음을 완전히 배제
한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리가 교회 부흥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교회 부흥의
동기와 목적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부흥을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출발점이
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구호를 단순히 교회 부흥의
대의 명분이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회 부흥의 유일한 내용
과 목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부흥의 목적이 아닌 대의 명분과 수단으로 전락할 때 우리
는 결과제일주의와 결과만능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과만 중시하는 것
은 지극히 세속적인 성공주의의 전형이다. 이러한 성공주의가 교회에 침투하
게 된 것은 “soli Deo gloria”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로 이해한 것
과 무관하지 않다.
2. ‘soli Deo gloria’에 대한 오해
개혁주의를 지향한다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기 위해서는 신자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도 세
상에서 성공 신화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가르친다. 이것은 세상
이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 곧 성공이며, 이 성공이야말로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에
서 비롯된다.
정말 그런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길이란 세상이 인정하는
r
‘잘 됨’이요 ‘성공’인가? 공부를 잘하는 사람,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
람, 돈을 잘 버는 사람 등등 소위 세상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들만이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인공들인가? 과정이야 어떠하든 상관없이 결과만 좋
으면 되는가?
성공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우리는 너무 쉽게 착각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성공 지향적인 심
리를 포장하고 숨기며 정당화한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허울 좋
은 대의 명분과 수단에 불과하며 가장 유의미한 목적은 자신이 원하는 성공
일 뿐이다.
이 성공은 반드시 부귀 영화로 귀결된다. 그는 성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
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성공할 수만 있다
면 거짓과 속임수, 위선, 악평과 비방도 유익한 수단이 될 것이다. 아마 그
런 사람들에게 정직과 성실이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가난하고 못난 사람
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의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분명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요함은 바르고 정직한
것, 성실한 것, 공의로운 것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잘 되는 것, 즉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제일주의와 결과만능주의 위에 세워진 바벨탑이
리라. 하나님께서 과연 그러한 성공을 원하시고 인정하실까? 교회에 만연해
있는 이와 같은 성공제일주의와 결과만능주의는 “soli Deo gloria”란 문구
를 잘못 이해한 것, 즉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성공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성공 자체가 죄악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보다는 오히려 겸
손히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대로 자신의
뜻을 이룰 때 그것을 성공이라 인정하신다. 이것이야말로 믿음 위에 세워진
성경적인 성공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공은 정직과 성실과 겸손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
는다. 그와 같은 올바른 성공은 일의 내용과 과정이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
지 않을 만큼 정직과 성실과 겸손으로 채워졌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려한다.
참된 성공은 인위적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상이요 선물이다. 그 보상
과 선물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는 것으로 우리가 원하는 때에 주
어질 수
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감사의 마음과 겸손의 자세가 없으면
결코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는 감사와 겸손의 자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나
아가 더욱 감사하고 더욱 겸손하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훈련을 그리스도 안에서 세
상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받아야 한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낮아지
려 하고 하나님만 높이려 하는 자세, 바로 이 자세가 “오직 하나님께만 영
광이”라는 사상의 핵심이다.
3. ‘soli Deo gloria’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손에 달린 것도, 우리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
도 아니다. 하나님 자신만이 영광의 주체이시며 동시에 그 영광의 대상이시
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받아야 할 영광을 스스로 받으시는 분이시다. 이것
이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심지어 사탄의
악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운명론이나 숙명론이 아니다. 운명의 신은 결코 우리 인간을 인격적
으로 다루지 않는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
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받으시되 자신의 모든 피조
물들을 통해 받기를 원하신다. 그 가운데 특히 인간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
하신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이며 수단이다. 하지만 이것
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의식을 가진 통로와 수단
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
을 주셨으며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
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허
락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요 영광이
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우리 자
신의 역할까지 스스로 정하고 그렇게 하게 해 달라고 때를 쓸 것이다. 예컨
대 ‘하나님, 나는 주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주연이 아니라면 당장 당신
의 영광스러운 극장에서 내려가겠습니다’는 식의 태도로 하나님을 조를 것
이다.
이런 사람은 기도를 무슨
주문이든 들어주는 알라딘의 마술램프로 착각한
다. 물론 기도는 기도하는 바른 방법을 잘 배우고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치한 기도이든, 성숙한 기
도이든 모두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해
서 유치한 기도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주연이고 하나님께서는 조연이라고 하자. 램프의 거인처
럼 조연인 하나님께서는 주연인 우리의 요구와 지시에 따라 자신의 막강한
능력을 사용하신다. 여기서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해내느냐 하는 것은 오직
조연을 주무르는 주연의 능수능란한 솜씨에 달려 있다.
주연은 자신의 든든한 부하장수인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
제든지 자신이 원하고 요구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 방
식으로 일을 추진하기만 하면 된다. 즉 스스로 대단한 일을 시작하고 하나님
께 그 일을 완수하도록 명령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라는 말이 난무하겠
지만 결국 그 영광과 은혜는 ‘인
간 높이기’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 높이기’는 겸손과 반대 현상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몇 몇 특정 인물이 나누어 갖거나 한 사람이 통째로 빼앗아버리는 것
이다. 자의든 타의든 ‘인간 높이기’는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대신 앉는
것이므로 분명히 비성경적이고 불신앙적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
는 구호는 하나님 중심 사상을 대변하기 때문에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모든
형태의 인간주체사상을 거부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기를 원합니다”는 하나님 주권 사상은 모든 일
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기 때문에 그분 외에는 누구도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의 주체와 객체가 되신다는 사실이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분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므로 나는 할 일이 없
어!”라는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수동적인으로 만들지 않는
다.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만 내가 그 빛과 소금의 주
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통로, 의식 있는 도구로써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
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영광의 한 터럭도 탈취하지 않고 모든 영광
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
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받으시지만 ‘우리를 통해’ 받으시기
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그 영광의 통로이며 동시에 동참자이다. 우리가 그
영광의 능동적인 도구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모양으로 사용
하시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든 하나님
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하고 감사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하나라도 더 나누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높
이는 일에 목숨을 거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낮추는 일에 목숨을
건다. 이것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다. 세상의 주
인이시지만 나그네처럼 사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
라 사는 이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는가!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았던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작은 그리스도인’(a little christian
in this world)으로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적 사랑
을 만 천하에 보여줄 수 있는 성령의 사람, 능력의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
해 부단히 자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코람데오(coram Deo) 정신의 진수요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진정
한 제자도(discipleship), 즉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아무든
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
니라”(막 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