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우리시대 설교자상 김병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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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기념주일특집<2>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우리시대 설교자상

김병혁 목사·캘거리개혁신앙연구회

◈…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진실한 목사 되기를

교회라고 이름한다고 다 진정한 교회일 수 없듯이 설교라고 말한다고 해서 
모두 설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교라고 모두 설교라 할 수 없어

개혁된 교회를 지향하는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바르게 공급
하는 일을 참된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로 삼았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서 목회자를 세웠다고 확신한다. 
전통적인 개혁교회는 목사를 통한 말씀 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
문에 늘 강단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스위스 제1신앙고백은 교회에
서 목사의 직분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교회의 목사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
의 동역자임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들을 통하여, 자기를 믿는 
자에게 
자기에 관한 지식과 죄 사함을 주시며, 사람들을 회개시키시고 경건하게 하
시며 위로하신다. 그런가 하면, 그들을 경고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효능과 능력을 주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 것을 알아
야 한다. 이러한 능력과 효능을 피조물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확실하
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그 택하신 자들에게 위탁하신
다(제15조). 

칼빈은 제네바 신앙고백서에서 설교와 관련한 목사직의 중요성과 의의를 보
다 섬세한 필체로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목사 이외에는 어떠한 목사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하는 목사는 가르치고 징계하고 위로
하며 칭찬하고 경고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양을 먹이는 한편, 모든 잘못
된 교리와 마귀의 기만에 항거하고, 성경의 순수한 교리에다 그들의 꿈이나 
어리석은 상상을 혼합하지 않는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맡겨진 권세와 권위만을 위임받아 하나
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다스린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아무것
도 할 수 없거니와 해서도 안 된
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진실
한 목사를 하나님의 사자요 대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직접 하
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들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모두 유혹하는 거짓 선지자들, 즉 복음의 순수성을 버리
고 그들 자신들이 조작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고난을 당하지도 않거니
와 백성들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로 사냥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내어 쫓김을 받아 마땅하다(제20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예배모범에는 설교자의 자세에 관해 좀 더 구체적
인 언급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설교자)는 합법적인 안수의 규칙에 따라서 그런 중대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원어들과, 신학에 부종된 인문과학에 관한 습득과, 전
체에 대한 지식과, 무엇보다 성경에 보통 신자들 이상으로 마음과 뜻을 쏟
아 연습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과 그 외 다른 건덕의 은사들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상당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게 하시고
자 하시면 어느 때고 아직까지 이르지 못한 진리를 승인하고 받을 
결심을 하
고 기도와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조명과 건덕의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그는 그가 준비한 것을 대중 앞에 전달하기 전, 개인적인 준
비 가운데 사용하고 개선할 것이다. 
보통으로 그의 설교 주제는 신앙의 원칙이나 어떤 항목을 설명하는 성경 본
문이어야 하고 … (중략) … 어떤 경우에서든지 본문의 범위를 부지런히 살
피고 거기에서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교리의 주요 항목과 근거를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설교자로서의 목사에 관한 이해는 청교도 목회
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일례로 핸리 스미스는 설교의 내용(범위)에 대
해 “통치를 받아야 할 모범, 규례로 성경을 두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 말씀
이 가르치는 것만 믿고, 설명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말씀이 금
지하는 것을 증오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청교도 설교자들은 오직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 
교리 중심의 설교를 행하였다. 
조엘 비키는 청교도 설교자들을 가리켜 성경 해석학의 원리를 제공해 준 장
본인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어가는 사람이 죽
어가는 사람에게 전하듯 전하였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설교는 교회에 하나님
의 은혜가 구속의 내용으로서 전달되는 유일한 은혜의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
문이다. 
이것은 설교란 설교자의 인격이나 취향이나 경험을 증거하는 과정이 아니
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대변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거룩한 사역을 맡은 자가 목사이다. 그러기에 목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하게 말씀을 수종드는 종의 모습으로 나아
가야 한다. 
그렇다면 설교자들에게서는 하나님을 몸서리치게 경외하는 자세,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깊게 살피는 신중함,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풀어내는 능력, 하
나님 말씀을 은혜의 수단으로서 증거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님 말씀을 대
하는 자들에 대한 겸손함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실례로 일부 유명하다는 설교자들을 
보면 설교를 빙자하여 청중들에게 자신들의 감상과 지식과 경험을 강요하
며,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신변잡기적 잡담 수준의 이야기로 대부분의 설
교 시간을 할애
하고 있다. 설교 도중에 함부로 막말을 하고 농담을 던지고 
성도들을 우습게 여기는 어투로 장난을 치며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진리인 
양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에는 진실과 온유와 겸손이 없다. 자랑과 허
세와 위선이 가득하다. 
이런 설교는 죽은 영혼을 살리고 산 영혼을 북돋는 설교가 아니다. 이런 설
교자는 상한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도 아니며, 갈한 심령에 단비를 뿌려주는 
농부도 아니다. 이런 설교와 설교자는 하나님의 공분만을 살 것이다. 이런 
설교와 설교자는 성도들의 귀와 양심을 가릴 뿐이다. 
이런 설교가 봇물 터지듯 하고, 이런 설교자들이 말씀 선생으로 대접받고 있
다는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지적처럼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렘 
5:30)이 아닐 수 없다. 

설교에는 온유와 겸손 동반되어야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
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 5:31)는 예
레미야 선지자의 무거운 음성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