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한국교회 자화상_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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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돌아보는 한국교회 자화상

최재호·본보 객원기자

◈… 종교개혁은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 형식적 기념은 교회의 허상 벗어나지 못해

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켜진다. 과연 한국교회에 있어서 
종교개혁 기념주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
텐베르그 성당 게시판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날을 기념하는 이 날에 한국
교회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아니 교회개혁 기념일까지 제
정하여 지켜오고 있는 한국교회의 오늘의 모습은 어떠한가? 
종교개혁(이하 교회개혁)은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킴
을 의미한다. 말씀에서 떠난 교회, 말씀에서 떠난 교리, 말씀에서 떠난 예
배, 말씀에서 떠난 삶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돌이켜 회복한 것이 교회
개혁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개혁은 일회성의 개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
라 
‘날마다 개혁하는’ 교회개혁의 시작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해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모습
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지를 항상 돌아보고 재어보기 위함이라고 해
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교회개혁 기념일을 말하거
나 기념하는 기본적인 자세에서 잘못되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교회개혁 기념일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물론 몇몇 교회들이 매년 이날에 루터나 칼빈, 부서나 
멜랑히톤, 쯔빙글리 등 개혁자들의 생애나 그들의 신학 사상에 대해, 또 그
들의 교권에 대한 영웅적인 투쟁에 대해 학술회나 강좌를 열고 있는 것은 사
실이다. 
그들 교회들이 개혁자들의 신학과 생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과연 그들 중 얼마가 그 시간을 오늘날 자신들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
에서 얼마나 비켜나 있는지를 진정으로 성찰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는지에 대
해서는 미지수이다. 
성경의 기준에 따라 믿고, 예배하고, 살기를 원했던 개혁자들의 삶과 신학
을 공부하면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성경의 거울
에 비추어 보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매년 성탄절을 지키면서도 그 날
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넘어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우리 시대 한국교회에 제2의 교회개혁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설득력 있게 들
려온다. 어쩌면 교회 개혁자들의 후예를 자처하는 오늘날 교회들이 껍질과 
형식을 차용하면서 알맹이와 본질을 버린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회개
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칼빈은 말씀의 바른 선포와 경청, 성례의 바른 시행을 성경이 나타내는 교회
의 참 표지(sign)라고 보았다. 그 이후 개혁교회들의 신앙고백문인 벨직신앙
고백서는 권징의 바른 시행을 참 교회의 표지로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이러
한 표지에 한국교회를 대입해보며 몇 가지 생각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1. 바른 말씀선포와 경청의 측면에서 

누군가가 한국교회에는 말씀이 넘쳐난다고 했다. 설교, 책자, 방송이나 인터
넷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넘쳐난다고 한다. 하지만 물이라고 다 
식수가 아니듯이 강대상에서 외쳐진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 자신의 욕심을 채운 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부추기는 목사, 강단에서 욕지거리와 음담패설을 일삼
는 목사, 말씀을 빙자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목사들도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교회에서 지탄받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의 미래로 주
목받는 이들이라고 한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성령 안에서 다른 말씀을 통해 명확
히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을 경계했다. 
오늘날 몇몇 한국의 부흥사들은 자신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1백 
가지의 설교를 할 수 있다고 떠벌린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하나님
의 말씀은 오직 한가지 의미를 가지고 전해진 것이다. 동일한 말씀이 회중에
게 전해질 때 성령의 역사로 인해 적용되는 부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설교는 너무도 변질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
위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를 표절하거나 설교자의 의도에 맞춰 각색하며 적당
하게 전달한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말인 양 오만한 모습을 보이거
나 농담처럼 ‘개그’를 하는 이도 
많다. 
설교자나 회중이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전하고 들
으며 말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원리이건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러한 원리
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말씀을 듣는 이들의 모습도 원리를 떠나기는 마찬가지다. 선포되는 말씀에 
대해 임의로 취하거나 버린다. 목사를 비정상적으로 높이지만 정작 말씀하시
는 하나님에 대해 경외하며 순종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이는 우선은 설교자인 목사의 문제이며 또 감독자인 장로의 탓이다. 한국교
회에서 장로는 ‘교인의 대표’로 대접받고 권위를 내세우는 특별한 존재
다. 선포된 말씀을 따라 교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권면하고 감독하는 그런 원
리적 모습에서 떠나있다. 
2. 성례의 바른 시행의 측면에서 

7성례전을 가진 로마교회와 달리 개혁교회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주님
이 제정하신 성례로 인정한다. 
세례는 참된 신앙고백을 확인하고 옛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새로이 거듭난 존재로 교회에 접붙임을 상징하며 인치는 예전이다. 하지만 
이 세례의 의미는 한국교회에서 훼손되고 퇴색된 지 오래다. 먼저는 신앙고
백을 확인하는 
과정이 형식적이다. 
어느 교회 당회의 세례를 위한 문답시간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교회생활 잘하
라는 권면으로 이뤄졌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진중세례식은 또 어떤가? 그 다음 주면 절에 가서 ‘초
코파이’하나에 수계를 받을 병사들에게 세례를 베풀고는 “이번에는 몇 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기독언론들에 앞다투어 떠들어대는 형편
이 아닌가. 여기에 당회에 의한 신앙고백 확인절차나, 세례를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 자인지에 대한 확인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주의 만찬은 또 어떤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한 떡에 참예하는 형제로서 
서로의 삶과 신앙고백을 나누는 원리가 지켜지고 있는가? 서로에 대해 잘 알
고 하나됨을 이뤄내기는커녕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형편이 아닌가? 
어제까지 성찬을 나누다가 오늘 갈라져 싸우는 교회들을 보며 그들이 성찬
에 제대로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목사를 지지한다며 갈라져 싸
우고, 땅 문제로 싸우고, 교회의 주도권 문제로 싸우는 우리 교회의 현실 앞
에서 그들이 공예배시에 성찬의 참 의미를 되새겼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과
연 의미가 있을
까. 

3. 권징의 바른 시행의 측면에서 

한국교회에 제대로 된 권징이 사라진지 오래다. 작은 교회는 교인들이 상처
받고 교회출석을 하지 않을까 봐 바른 원리에 따라 시벌하지 못한다. 큰 교
회는 교인들이 너무 많아 그들의 삶과 신앙생활을 점검할 수가 없다. 
어찌하다 시벌을 했다한들 교회 수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이 교회에서 시벌
을 받고 다른 교회에서 버젓이 임직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교단을 옮겨버린
다. “이 교회 아니면 교회 없냐”면서 되레 큰소리다. 
개인도 그러하지만 교회도 그렇다. 이 문제로 교계가 시끄러워지는 경우도 
종종 목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교회나 교인들의 순결과 거룩성이 심하게 
훼손된다. 말씀에 따른 권징이 없고 또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씀 앞에
서 겸비하는 삶의 자세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서의 교회적 거
룩성이 유지될 수가 없다. 
또 권징을 받으며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자세도 없어졌다. 얼마 
전 문제가 된 대구 모 교회의 목사가 교단적 권징을 받겠다면서도 자신을 추
종하는 교인들에게는 계속해서 자신이 음해를 당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태도

n로 일관하고 있음은 참 권징의 의미에서 벗어난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권징을 통해 죄인을 죄에서 떠나게 하여 말씀 위에 바로 서도록 한다는 의미
는 사라지고 정적(政敵)이나 미운 털이 박힌 자를 회(會)에서 제거하는 괘씸
죄에 의한 시벌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권징의 참 뜻을 버리고 욕심과 목적
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자화상은 분명 성경이 말하는 교회
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식의 교회개혁 기념일을 계
속 지켜간다면 내년에도 아니 10년, 20년이 지나도 한국교회는 아무런 개혁
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더욱 타락하고 원형에서 더 많이 빗겨난 
비틀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년 맞는 교회개혁 기념주일을 이젠 좀 다르게 맞을 수는 없을까? 개혁의 
형식만 취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바라보고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성경
의 잣대에 우리들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점검해 보기를 바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