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4:3C-4b
조병수 교수|합신 신약신학
학교의 교수식당에는 그림 한 점이 말없이 걸려있다. 그 그림은 비록 복사본
에 지나지 않지만 식사하러 그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영혼을 울리는 교
훈을 준다. 식탁 위에 놓여진 것은 고작 작은 빵 토막 그리고 수프 한 그릇
이지만, 그것을 앞에 두고 꽉 껴잡은 투박한 양손에 머리를 기댄 채 기도하
는 노인의 진심어린 모습은 아무리 자주 바라보아도 영락없이 감동을 일으킨
다.
봄이 기지개를 펴면 산과 들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스팔트의 터진 틈에서
도 향긋한 봄나물이 돋는다. 봄나물은 하나님께서 식물을 창조하신 이치가
고스란히 표현되는 태초의 향기를 발하고, 우리의 후각은 놓칠세라 그 신비
한 냄새에 빨려든다. 사방에 풀이 생명력을 얻는 계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린 풀을 먹거리로 주셨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사가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열매보다도 이렇게 흔하디 흔한 풀들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고 시시한 풀로부터 시작해서 희귀한 먹거리까지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감사함으로 받도록 하기 위함이
다(3c). 하나님께서는 크고 작은 먹거리를 창조하시면서 사람들이 감사함으
로 받기를 원하셨다. 사람은 배부르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식사는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에서는 식사
가 포만과 사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에서 식사가 진정으로 목적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는 감사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총을 느끼고 누리고 있
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꾸준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식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그는 먹거리에 대하여 감사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한
다.
믿는 사람들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굉장한 산해진
미뿐 아니라 아주 보잘것없는 음식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진정한 신자는 사
소한 양식조차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기 때문
이며, 하루 먹을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님의 뜻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빵 조각
몇 개와 작은 물고기 두어 마리를 손에 들고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던 주님
의 모습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이 모든 음식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진
실이다(4b). 음식에 대하여 말하자면 사도 바울은 감사 그리고 감사밖에는
말할 것이 없다. 감사는 모든 먹거리를 귀하게 만들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모든 먹거리를 천하게 만든다. 천한 음식물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귀한 것이
되고, 귀한 음식물도 감사함으로 받지 않으면 천한 것이 된다. 감사하는 사
람에게는 값싼 음식도 약이 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비싼 음식도 독
이 된다. 그래서 식사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이다. 감사가 들어 있는 식사는
생명이며, 감사가 빠진 식사는 사망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보잘것없는 음식도 감사의 대상이
된다. 감사는 별볼일없는 음식도 맛있게 만든다. 맛은 음식의 값에 달린 것
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린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음식의 가치는 차림
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이
있다. 즐겁고 편안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상에 맛이 있지 않고 입에 맛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시시한 음
식물이라고 감사한다. 그리고 감사는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든다. 감사가 반
찬이다.
모름지기 음식의 맛과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먹느냐에 있지 않고 어
떻게 먹느냐에 있다. 그리고 어떻게 먹느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
께 먹느냐 하는 것이다. 원수와 자리를 같이 하면 진수성찬 앞에서도 맛이
떨어지고, 친구와 자리를 같이 하면 형편없는 음식에도 맛이 붙는다. 음식
에 감사하는 것은 음식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식사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이 음식을 탓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 앉기 때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