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지대는 없다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바울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을 율법 아래 있었던 과거의 삶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
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
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
21)는 지적처럼 율법 아래 있는 삶과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이 다르지 않기 때
문이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 성령으로 따라
사는 삶과 대치된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
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
라”(갈 5:22-23)는 성령의 열매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성령은
모세의 율법(갈 5:14)과 그리스도의 법(갈 6:2)이 요구하는 바로 그 중심적
입장인 사랑으로 신자들을 인도하신다.
이러한 논증을 근거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고 선언한다. ‘그리스도 예
수의 사람들’은 육체, 즉 아직 우리 안에 활동하고 있는 죄와 반역의 원리
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죄악된 욕망에 대한 승리
가 결정된다.
분명히 옛 자아 또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롬 6:6; 골 3:9-
10; 엡 4:22-24) 육체는 여전히 우리를 공격하고 성령을 방해하기 때문이
다. 실제적인 십자가 형벌처럼 육체의 죄악된 인간의 욕망은 십자가에 날마
다 못 박아야 한다. 그리고 이 육체의 십자가 처형을 통해 성도들의 몸에서
역사하는 죄의 권세를 그리스도께서 깨뜨리셨음을 입증해야 한다.
본문에서 성령으로 ‘행한다’는 말은 군사적인 용어로 ‘성령의 대열을 따
른다’ 또는 ‘성령의 지도력과 보조를 맞춘다’는 의미이다. 이 개념은 자
부심을 내세우지도 않고, 서로 간에 경쟁하자고 도전하지도 않으며, 질투심
도 없음을 포함한다. 이처럼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의미는 전투에 참여하는
일이며 싸워서 이겨야 할 육체의 욕심과 적대 관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 둘 사
이에는 결코 중립 지대가 없다.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 자신에게 위
임된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자기 자신을 성령과 하나님께 위탁했기 때문이
다. 오로지 우리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도록 부름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