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회 총회’라는 명판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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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회사를 돌이켜보면 교단 분열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크게
는 고신측의 분열,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로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분
열과 이합집산의 형태가 있어왔다. 분열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이후부터이다. 이 이전까지는 그래도 분열의 명분이 있었다. 신사참배 문제
라든지 에큐메니칼 문제 등은 그래도 명분이 있는 분열에 속한다. 그러나
60년대 이후에는 주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문제로 분열이 있어왔다.
그렇다고 분열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분열
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해서라도 기독교의 본질을 유지하고 신앙 노선
을 정립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
다. 최초 개신교가 종교 개혁의 차원에서 구교로부터 분열의 방법을 취한
것은 이런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살 일이다. 구교 안에서 옷만 갈아입는
방법만으로는 기독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 과감하게 분열의 방
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지 않았겠는가?

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장로교회사를 분열의 역사로 보기도 한다. 지
속적인 자아 갱신과 신앙 양심의 자유를 향해 지향하는 개혁은 분열이라는
방법으로 새생명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 교회뿐 아니라
영국이나 화란, 미국 등 세계 각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의
역사라는 것이 결코 부끄럽거나 무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사분 오열되어진 60년대 이후의 한국 장로
교단들을 돌이켜 보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적 이권을 위한 분열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 예가 79년 합동측의 분열을 들 수 있다. 당시 비주류계가 분열해 나가
면서 급기야 7-8개의 교단을 급조해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들은 다시 교단통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
리고 하나의 교단이라는 깃발 아래 다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정
치적인 이유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우리 교단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체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79년 합
동측의 주류와 비주류의 분열, 81년 개혁 
교단 설립, 85년 청담측과의 분열
이라는 과정을 겪어가며 우리 교단은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과연 그러
한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9월을 맞아 너도 나도 ‘84회 총회’라고 명판을 높이 달고 개최되는 각
교단들의 총회를 지켜보며 우리 교단의 ‘84회 총회’라는 회기가 과연 어
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