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 특강| 신앙의 기준으로서 주어진 성경_최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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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_ 특강  

신앙의 기준으로서 주어진 성경  

< 최찬영 목사, 런던 다윗의교회 >

    

 

“기독교는 이적과 표적이나 지혜의 말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 전파하며,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역사하신다는 것 잊지 말아야”  

 

   신자들의 신앙 기준은 바로 성경이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이나 타협이 없다. 성경이 죄라고 하면 죄요 아니라 하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도와 찬송과 물질을 드려도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이방인들의 종교 행위에 방불하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있다. 프로쿠르스테스는 행인들을 붙잡고 철 침대 위에 사람을 눕혀보고 침대 길이보다 긴 사람은 긴 부분을 잘라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작은 사람은 키를 늘려 죽이는 악당이었다. 후에 프로쿠르스테스는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프로크루스테스가 행한 그대로 그를 철 침대에 눕히고 그의 키가 침대보다 길자 그의 다리를 잘라 죽였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자신의 어떤 절대적 생각을 정해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준에는 한계 있어

   세상의 삶처럼 신앙생활에도 기준이 있다. 기준이 없으면 신앙은 올바로 자라지를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신앙임에도 자신은 올바른 신앙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런 착각은 결국 저주를 초래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위의 말씀을 보면 정통 기독교에서는 대단한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한 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저 평범한 신앙이 아닌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대단한 신앙을 가진 자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내게서 떠나라’는 저주를 받는다.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불법을 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참된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 신앙은 불법 야기해

   법대로 신앙의 길을 걷는 자들은 좁은 길로 간다. 그러나 불법자들은 넓은 길로 간다. 법대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이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길이요 영생이다.

   신앙의 기준은 성경인데 오늘날 성도들은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처럼 자신이 만든 철 침대를 기준으로 신앙을 이리저리 재면서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있다. 사사시대처럼 ‘사람마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만족을 이루는 종교행위일 뿐이다.

   만일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무시하고 신사도운동, 은사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환상, 예언 등 비성경적인 프로그램을 성경적이라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것은 불법이요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이다.

 

비성경적 프로그램 용납할 수 없어

   참 성도는 좁은 길을 가는 자로서 신앙고백과 성경 교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체험이나 은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곁길로 간 것입니다 … 성경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의 교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자신의 신앙과 삶의 유일무이한 법칙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모든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바로 성경입니다.

 

체험 기적은 신앙의 기준일 수 없어

   신앙의 기준을 체험이나 은사에 두지 말기 바란다. 체험과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았다거나 참 신자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4-8).

   사도적인 기적 곧 이적과 표적은 사도시대의 종료와 더불어 종식되었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방편이었으므로 사도시대 이후로는 사라졌다. 물론 기독교가 기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의 역사에 나타난 기적과 이적을 믿으며, 그것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이것을 행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임을 믿는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도시대적인 이적과 표적들에 대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바울은 사단의 거짓 역사가 많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2:9-10).

 

기적 행함이 구원의 근거될 수 없어

   B.B 워필드는 “초자연적인 은사는 사도시대에 국한된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사도들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은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칼빈도 “안수로 베풀어졌던 이적적인 권능과 놀라운 이적은 끝났으며, 이것들은 단지 얼마 동안만 올바르게 지속되었다 … 하나님이 이런 이적들을 중단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아주 저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왕국의 장엄함과 그 말씀의 위엄이 충분히 밝혀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사도 바울의 증거대로, 기독교는 기적(이적과 표적)이나 지혜의 말을 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 전파하며,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역사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전 1:18-21).

 

십자가의 복음만을 바라보아야

   참된 신앙은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성령의 조명을 받아 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