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신앙교육서
안상혁 교수(합신, 역사신학)
종교개혁자 칼빈은 《제네바 신앙교육서 (교리문답서) Catechismus Ecclesiae Genevensis》를 제네바 종교개혁에 있어 중심적인 위치에 두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교회는 신앙교육서 없이는 결코 보존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536년 제네바에 도착한 칼빈은 화렐의 설득을 받아 제네바 종교 개혁에 참여한다. 개혁 신학에 의한 체계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성직자들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제네바의 정황에서 칼빈은 교구민과 자녀들을 바른 교리로 교육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1537년 1월 16일 시의회에 제출한 《제네바 교회의 조직에 관한 시안》에서 칼빈과 화렐은 “자녀들의 신앙고백은 의심의 여지 없이 교회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는 각 개인을 기독교의 기초 (교리)로 교육하기 위한 일종의 교리문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간단하고 쉬운 기독교 신앙의 요강(要綱)’을 마련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같은 해에 칼빈은 제1차 《신앙교육서》를 집필하여 33개 항목으로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들을 비교적 간략하게 해설하였다. 제1차 《신앙교육서》는 한 해 전에 출판된 《기독교 강요》 초판의 요약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두 가지 모두 하나님과 인간을 아는 지식, 율법(십계명), 믿음(사도신경), 기도(주기도문), 성례 등의 공통 주제를 다룬다. 또한 성경 전체의 포괄적인 진리의 체계를 요약적으로 학습시키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는 면에서도 동일하다. 물론 《신앙교육서》는 《기독교 강요》에 비해 짧고, 덜 논쟁적이며, 좀 더 고백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면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일례로 칼빈은 《기독교 강요》 초판의 여섯 개의 장들 가운데 한 장을 할애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거짓 성례들을 거친 언어로 논박하였다. 이에 비해 《신앙교육서》에는 공격적 언어가 생략되어 있다. 1538년, 칼빈은 제1차 《신앙교육서》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출판함을 통 보다 많은 교회들에서 《신앙교육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1차 《신앙교육서》는 칼빈의 기대만큼 활용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칼빈은 화렐과 더불어 제네바로부터 추방당했기 때문이었다(1538년 4월).
1541년,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와 줄 것을 간청하는 시의회는 앞으로 신앙교육과 권징을 성실하게 실천할 것을 약속한 후에야 비로소 칼빈의 허락을 얻어 낼 수 있었다. 1542년 칼빈은 불어로 작성된 제2차《신앙교육서》를 출판했고 3년 후 동일한 내용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라틴어 서문에서 칼빈은 신앙교육의 필요성을 또다시 강조한다. 즉 교리문답 교육을 통해 교회를 갱신하고 순수한 교리를 보존하며 그것을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 목표임을 밝힌다. 칼빈에 따르면 중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리문답 교육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온갖 외면적인 장식품들로 가득 치장한 견진성사를 위치시켰다. 그 결과 중세 교회는 미신적인 신앙과 비성경적인 교황주의를 강화하며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 칼빈과 교회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있어, 올바른 교리문답 교육은 하나님의 교회를 바른 진리 위에 설립하고 다음 세대의 교회가 또다시 진리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실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칼빈은 제2차 《신앙교육서》(1545)의 서문에서 ‘교리의 일치’에 기초한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했다. “저는 현재 몰락한 기독교를 위하여 본 교리문답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지역에 분산된 교회들은 이와 같은 공식적인 증언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치된 교리를 간직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칼빈의 《신앙교육서》는 작게는 지교회의 신앙교육과 성례를 집행하는 데 사용되고, 크게는 복음의 순수성과 개혁된 교회의 유지 및 전수에 필요하며, 가장 넓게는 공교회의 교리적 일치와 연합에 봉사하는 목표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1538년 바젤에서 출판된 칼빈의 《신앙교육서》이다. 흥미롭게도 서명은 Catechismus sive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신앙교육서 혹은 기독교 신앙 강요)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신앙교육서와 기독교강요 초판의 연속성을 잘 예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