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제7차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정례회 참관기_류성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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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정례회 참관기

류성민 박사(프랑스위그노연구소 연구교수)

 

지난 2월 16일(2023년) 프랑스위그노연구소(소장 조병수 박사)의 제7차 정례회가 ‘위그노 전쟁’이라는 주제로 소망교회(김정민 목사)에서 개최됐다. 현장과 온라인에서 70여명이 참여하여 위그노 연구에 대한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첫 강의는 10분 정도 ‘앙리 4세’의 전쟁과 관련된 영화의 일부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영상을 통해 당시 전쟁의 분위기와 참여했던 군인들의 복장, 무기, 편성 등을 엿볼 수 있었고, 전쟁이 보여준 끔찍한 결과 또한 현실감 있게 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 조병수 박사는 1562년부터 1598년까지 있었던 8차례 위그노 전쟁을 다루었다. 개혁파 신앙을 가진 위그노가 처한 종교적 정치적 상황, 전쟁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 각 전쟁에서 주요한 인물들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 그리고 전쟁의 과정과 결과들을 간략하고 명료하게 해설하였다. 이 강의를 통해 지루할 수도 있는 전쟁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생생하고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더하여 강의 뒷부분에서 다루었던 전쟁에 대한 칼빈과 베자의 신학적 논의는 교회를 반대하는 정부에 대해 교회와 개별 성도가 국가의 일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원리들을 정리해주었다. 요약하면, 칼빈은 폭정에 대한 능동적 저항은 하위 공직자에게 허락된 것이라고 보았다. 베자는 칼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공직자의 저항 가능성을 인정했다. 위그노 전쟁은 이런 저항 이론에 근거하여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위그노 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위그노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앙을 공인받으려는 데 있었다” 다만 성경적 원리가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는 크게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쟁 당사자들이 처한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 그리고 그들이 가진 죄된 본성과 욕망이 신학자들의 성경적 원리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번 강의는 이러한 위그노 전쟁의 현실을 잘 드러내어, 위그노 전쟁이 단지 신학에 기초한 이론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정치와 매우 깊은 연관 속에서 발생한 실천적 사건임이 잘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 이남규 박사는 위그노 전쟁이 프랑스라는 한 국가에만 국한된 내전이 아니라, 전 유럽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과 연결된 전쟁이었음을 밝히면서, 위그노 전쟁과 관련된 독일의 참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특히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563)으로 유명한 팔츠의 선제후 경건자 프리드리히 3세와 그의 아들 요한 카시미르의 위그노 전쟁 참전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독일은 루터파가 다수였고, 프랑스 위그노는 개혁파였기 때문에 루터파는 위그노를 지지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비판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독일에서 개혁파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프리드리히는 동일한 신앙을 가진 위그노를 지지하고 전쟁 중에 있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자 했다. 그 실천이 바로 자신의 아들 카시미르로 하여금 위그노 전쟁에 참전하도록 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팔츠의 대표적 신학자인 우르시누스가 ‘무기가 아니라 기도와 순교로 싸우는 것이 저들에게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에 대한 입장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비참한 현실을 낳았다. 심지어 프리드리히의 가족들이 서로의 반대편에서 참전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사실 위그노의 신앙과 전쟁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고려할 때 어려운 신학적 윤리적 부분이 있다. 개혁파 신학자들의 신학적 논의는 이론에 기반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전쟁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한 도구이다. 그래서 다수의 신학자는 전쟁 자체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작 신앙이 위협받는 전쟁이 발생한 상황에서 교회가 과연 어떤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단순한 이론적 원리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문제였다. 전쟁은 정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된 본성을 지닌 사람들의 욕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서 위그노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그 전쟁은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영적 원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끔찍한 세상의 원리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교회가 처한 영적 전쟁이라는 현실을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극적으로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전쟁이란 어떤 의미에서 타락한 사람의 죄가 극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위그노 전쟁은 우리의 영적인 삶이 주일 하루에 한정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복합적인 현실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을 경험하던 위그노들에게 삶이란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교회 구성원들의 치열한 현실의 실천이었다.

강의 전 영상에서 나온 장면 중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전쟁에서 목사의 역할이었다. 영적 사무를 돌보는 목사도 위그노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동원가와 선동가로서 역할을 감당했다. 이 전쟁의 명분이 하나님께 있음을 공포하고 전쟁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군사들의 사기를 독려했다. 현실에 기반한 신학의 실천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비록 전쟁이 종교적 동기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치러지는 방식은 죽고 죽이는 세상의 방식인데, 그 가운데 목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우리의 신학이 마치 제3자로서 현실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신학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위그노 전쟁을 통해 신자가 세상에서 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고 단순하고 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세상의 악한 세력은 너무나 강력하여 항상 참된 신자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그노 전쟁에서와 같이 신자의 전쟁은 완전한 패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약해 보일지라도 결코 세상에 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놓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작은 파리 한 마리가 거대한 코끼리를 이길 수도 없지만, 코끼리가 작은 파리를 이기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 파리가 ‘민중의 파리’일 때도 그렇지만, 그 파리가 ‘하나님의 파리’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정례회를 마치고 나가면서 참석자들은 위그노 십자가를 담은 기념품을 받을 수 있었다. 위그노의 신앙과 삶을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의 섬세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다음 정례회는 ‘위그노의 순교’에 대한 주제로 2023년 8월 17일 열리게 된다. 우리의 치열한 신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떻게 삶으로 드러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름에 열릴 제8차 정례회를 기대하며 참관기를 마무리한다.

 

요한 카시미르의 독일 팔츠 군대 참전(1568년 1월 제2차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