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가정
권중분 권사(노원 성도교회)
오후의 햇살이 아파트 숲에 비스듬히 내려앉는 것을 보고 시외버스를 탔다. 여러 정거장을 들렀다가 가는 버스여서 면 소재지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스름이 내려오고 별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그릇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봄기운이 가득해서 나물을 하기에 좋을 것 같은데 저기 들판에서 해도 될까요?”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보던 남편이 나를 보며 대답한다. “땅을 갈고 농사가 시작되고 있어서 아마도 제초제를 뿌렸을 텐데.” “그럼 강으로 가볼까, 다리 건너편 강둑이 나물을 하기에 깨끗하고 좋다던데.” 전에 들판에서 만났던 어르신이 해준 말씀이 생각났다. 남편은 자연산이 좋긴 하지만 시장에 가서 사는 것도 괜찮다면서 말했다. “그쪽은 갈대와 버드나무가 우거져있어서 다니기 힘들 텐데, 무리하지는 말고 산책 삼아 다녀오면 되겠네.”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내일은 강가로 산책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다음 날, 아침까지 비가 흩뿌리더니 하늘엔 비구름이 자욱했다. 봄나물도 할 겸 우산을 챙겨서 강가로 가기 위해 들판을 지난다. 봄갈이가 시작된 넓은 들판, 농사를 짓기 위해 갈아 놓은 논밭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누렇게 바랜 벼의 그루터기들이 남아 있는 논들도 눈에 띈다. 땅을 기계로 부드럽게 고르는 모습도 보인다. 들판의 아득한 끝에 있는 진회색 빛 산마루엔 구름이 두껍게 걸려 있다.
긴 다리 아래엔 맑은 물을 가득 담은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여인들이 일제히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끌고 지나간다. 다리의 중간쯤에서 마주친 인상 좋은 중년 여인이 저쪽 강가에 가면 봄나물이 많을 거라고 말해준다. 강을 내려다보니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큰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강둑 왼쪽은 멀리보이는 산 아래까지 논밭들과 드문드문 하얀 꽃이 만발한 과수원들이 있다. 강둑에는 가로수로 심겨진 산수유들이 늘어서 있다.
어느새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강가는 온통 갈대밭이다. 거친 겨울을 보내며 누렇게 바랜 갈대들이 기다란 몸통에 누런 이파리와 갈꽃을 달고 비스듬히 누웠거나 서서 바람에 서걱거리고 있다. 갈대들이 빽빽이 드러누운 비탈의 땅바닥은 어린 갈대들과 풀들이 자라나고 있다. 그 언저리를 따라 길쭉하고 싱싱한 이파리를 반짝이는 달래들이 여기저기 무리 지어 있었다. 크게 자란 달래를 뽑아 담는다.
강기슭으로 가까이 가자 뽀얀 솜털이 송송한 참쑥들이 모여 있었다. 장갑을 껴도 마른 검불들을 헤치며 나물을 만지려니 손이 따갑다. 한낮이 되어 버들강아지를 잔뜩 단 버드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강 건너편에는 게이트볼을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갈대숲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갔다. 드넓은 들판 너머로 초록빛이 번지는 늠름한 산들, 꽃구름이 피어나는 마을들, 그 풍경들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쪽파, 시금치, 노란 꽃을 피운 삼동초, 대파, 마늘들이 자라는 채소밭이 이어진다. 쪽파가 싱싱하게 자라는 밭머리에는 꽃나무들이 화사하다.
봄나물을 정리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일전에 남편의 휴대폰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카톡을 같이 보던 중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남편은 나처럼 연약한 사람을 ‘지혜로운 동반자’라고 저장해 두고 있었다. 그 순간 코끝이 찡하며 마음 가득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지혜롭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을 계기로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남편도 예배에 참석할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함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주변 사람들, 학생들과 소통을 잘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인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기를 기도드리고 있다.
나도 휴대폰에 남편을 ‘아름다운 동반자’로 저장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관계를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는 삶도 사람도 바르게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제한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이해가 안 되는 때에도 믿음 안에서 사랑하기를 선택하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는 황금률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를 경험하며, 부모와 배우자, 자녀를 향한 사랑의 언어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선한 자원이 됨을 다시 느꼈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올라가는 길, 차창밖에는 한층 더 성숙한 봄이 대지를 꽃빛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선물로 주신 아이들을 위해 행복한 마음으로 달래와 쑥을 꺼내어 요리하고 상을 차린다. 남녘 강가에서 온 봄의 선물들로 인해 봄 향기가 집안 가득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