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설교] 저녁도 있고 아침도 있다(창 1:1-5)_이선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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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있고 아침도 있다(창 1:1-5)

이선웅 목사(남문교회 원로)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이 넘치고 환경을 지배하고 넉넉히 뛰어넘는 사람으로 살아야

본문은 창조 기사로 천지창조 첫날에 대한 말씀이다.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고, 5절에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한다. 성경은 하루를 저녁부터 시작한다. 사실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가 아니라 0시부터 만 24시간이 지난 다음날 밤 12시까지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0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밤에 해당된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

요 1:1-4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고 요 1:9에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창조사역에 동역하셨다.(창 1:1-3) 친히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창 1:2)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심으로(창 1:3) 밝고 광명한 세계로 바꾸어 놓으셨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사람들이 범죄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졌다. 멸망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무지, 불신, 죄악 그리고 그것들을 항상 따라다니는 멸망과 저주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친히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장소에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지 모른다. 어둠의 세력은 사회에도 국가에도 개인에게도 있다. 바로 이곳에 빛을 비추시고 생명을 살리려 우리 주님이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요 1: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한다. 성도 여러분! 생명을 담은 이 빛만이 어둠 속에서 멸망 길 걷는 자들을 생명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나아가 빛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곡식이 결실케 하고, 초목이 자라게 하고, 과일을 영글게 한다. 빛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 준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엡 5:9) 우리 주님은 의로운 해요, 치료하는 광선이다.(말 4:2)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처럼 “치료하는 능력”과 “풍성한 생명”이 있다.

2. 누구나 밤같이 어둡고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통과할 때가 있다.

성경은 저녁(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요 9:4절에 밤을 가리켜 ‘일할 수 없는 때’라고 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밤은 일할 수 없는 때요 동시에 죽음의 때를 가리킨다. 시 30:5에서는 저녁을 가리켜 울음이 깃들이는 때라고 했다. 저녁(밤)을 고통의 때로 묘사한다. 이처럼 성경은 저녁(밤) 을 ① 일할 수 없는 때 ② 슬픔, 고난, 고통의 때 ③ 죽음 등으로 묘사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어쩌면 저녁이고 밤이다. 고난은 우리가 원하는 경험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때때로 고난을 경험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저녁이 있고 밤이 있다.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고생하거나 실패의 어려움을 겪거나 핍박을 받고, 뜻밖의 사고로 고통을 겪거나 이별의 아픔을 겪고 민족이 함께 고난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고난이나 시련은 성도에 대한 훈련이요 단련일 때가 많다. 군대에 가면 훈련부터 받아야 한다. 금을 용광로에 집어넣는 이유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보석은 문지르고 닦는 마찰 없이는 광채를 낼 수 없다. 고난이라는 밤을 통과하지 않고 승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도 여러분, 고난의 때에 십자가 단단히 붙잡고 그 고난을 이기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고난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고난을 당하면, 밖으로 나돌던 생각이 구심점을 찾아 자기 내부를 응시하게 된다.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시련은 영혼을 일깨워 준다. 도무지 큰소리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 고난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고난은 신앙 인격을 성숙시키고 새롭게 해 준다. 둔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어두운 마음을 일깨워 총명하고 지혜롭게 한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유익이다. 시 119: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다. 고난은 고난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고난도 은총이 되게 해 주신다. 여러분, 성도는 고난이나 환난을 면제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신에 성도는 고난이나 환난을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이다.
요 16: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시련의 때에 절대로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고전 10:13)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그 시련을 반드시 이겨내기 바란다. 고난 자체를 엄청난 손실로 바라보지 마라. 패배자가 되면 안 된다. 고난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고난이 내게 은총이 될 수가 있다.(약 1:2-4, 롬 5:3-4)
성경은 고전 15:19-20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다! 소망이 넘치는 사람,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 환경을 넉넉히 뛰어넘는 사람으로 사시기 바란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침도 주신다.

성경이 말하는 아침의 의미가 몇 가지 있다. ① 희망, ② 새로움, ③ 기쁨, ④ 하나님의 좋은 계획 등이다.(출 16:13, 시 30:5, 애 3:5) 예수님도 새벽에 부활하셨다.(막 16:9) 홍해가 새벽에 갈라졌다. 하나님께서 밤새도록 동풍으로 하여금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셨다.(출 14:21) 하나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아침마다 어김없이 만나를 내려주셨다.(출 16:31) 시 90:14절에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했다. 또한, 애 3:22-23절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라고 한다.
벧엘에서의 야곱의 아침은 참으로 멋진 아침이었다.(창 28:10-22) 야곱이 그의 형 에서의 장자권을 뺏은 것 때문에 브엘세바를 떠나 밧단 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다(창 28:11) 그는 외롭고 두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고 불안했다. 나그네를 위한 주막이나 여관도 없을 때다. 그냥 길가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아무데서나 노숙해야 했다. 어느 날 야곱이 벧엘에 이르러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가 보이고,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창 28:12-13)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창 28:13)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창 28:15)고 말씀 해주셨다.
그때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꿈, 환상, 영음 등을 통해서 계시하시던 때였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곱은 하나님은 자기 고향 브엘세바에만 계시는 줄 알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만 되시는 줄 알았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그래서 야곱이 꿈에서 깨어 말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그리고 이렇게 서원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로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나의 하나님도 되실 것이요)”(창 28:21)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물론 그날 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당장 그 주변 환경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배게 삼아 베고 잔 돌 할 것 없이 모두 다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야곱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느껴졌다. 모두가 자기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참으로 정겹게 느껴졌다. 하나님을 만나고부터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용기백배했다. 희망이 넘쳤다. 감사했다. 기뻤다.
전 7:14절에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고,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를 병행하여 주셨다”고 한다. 무엇이 형통이고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형통이고, 복이다. 창 39:2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더라”고 했다. 시 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을 만나 주셨는가? 그것도 야곱이 가장 힘들어할 때 그를 만나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들과의 언약을 지키심이었다.(창 12:1-3, 창 26:23-25)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에게는 너는 이래서 안 되고, 너는 저래서 안 되고가 없다. 비록 내게 허물이 많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은 절대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러분! 고난의 때는 우리가 참으로 자상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때이다. 하나님은 평안할 때보다는 고난의 때에 나와 더 가까이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과 언약하신 후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셨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이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친히 밤을 낮이 되게 하시려고 빛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절망은 희망을 이기지 못하고, 불행은 행복을 이기지 못한다. 겨울은 봄을, 밤은 아침을 이길 수 없다. 속이는 자, 거짓말쟁이, 비굴한 인생 야곱에게 멋진 새 아침을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누군가 인생을 축구경기에 비유하기를, 태어나서 25세까지는 준비 기간, 26세~50세까지는 전반전, 51세~75세까지는 후반전, 75세부터는 연장전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느 시점에 있든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