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왜 12월 25일이 성탄일로 정해졌나요?_박형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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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2월 25일이 성탄일로 정해졌나요?

박형용 목사(전 합신 총장, 신약학 교수)

 

12월 25일 성탄일은 엑시거스가 만든 월력에 따른 것이고 정확한 예수님의 탄생일은 아니다.

우선 예수님의 탄생 날짜가 12월 25일로 정해진 이유를 밝히기 전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독교 월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유대 땅은 로마(Rome)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고 전한다(눅 2:1).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로마의 황제는 가이사 아구스도(BC 31~AD 14)였는데 그는 바로 옥타비안(Octavianus)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사회적 상황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마 2:13~16).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도들과 제자들도 계속적으로 핍박을 받고 심지어 순교하기에 이르기까지 핍박을 받았다(마 26:14~16, 66; 27:22; 눅 23:23; 요 19:17~20; 행 12:2~5).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우리가 “그리스도 이전”(Before Christ: BC)과 “주님의 해”(Anno Domini: AD)로 구분하는 기독교 월력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이는 예수님 탄생 당시와 그 이후의 역사적 진전으로 보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의 말은 그 당시의 형편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스데반과 야고보의 순교 사건 이후 예루살렘에 핍박이 있어 제자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섭리는 이와 같은 재앙을 오히려 더 위대한 선(善)으로 바꾸셔서 제자들의 흩어짐과 함께 복음진리도 흩어지게 만들었다고 전한다(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Grand Rapids: Eerdmans, 1977, p. ii).
초창기 교회가 활동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핍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월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사용되고 있었던 월력은 로마 도시의 축성을 기초로 만든 월력이었다. 그 월력은 A.U.C.(Anno Urbis Conditae: In the year from the time the city(Rome) was built)라고 불렸다.
그런데 기독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1, AD b. 280~d. 337)는 유세비우스를 친구라고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aea)가 모였을 때(AD 325) 유세비우스(ca. 260~ca. 340)는 콘스탄틴 황제의 오른편 자리에 앉는 영예를 누렸고, 콘스탄틴 황제를 극찬하는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콘스탄틴 황제가 자신을 황궁으로 자주 초대하여 함께 식사도 하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었다고 전한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 황제가 대화하는 중 황제 자신이 막센티우스(Maxentius)와 싸울 때 십자가의 환상을 보고 군기(labarum)에 십자가의 표시를 넣게 하고 싸워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한다(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Grand Rapids: Eerdmans, p. xvi).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콘스탄틴 1세는 로마 시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막센티우스와 싸워서 승리하여 서방 로마의 패권을 손에 넣게 된다. 콘스탄틴 1세는 AD 312년 로마로 입성하여 로마 전역을 다스리는 명실상부한 서방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제는 AD 313년에 밀란 칙령(The Edict of Milan)을 발표하여 기독교에 자유를 부여하였고 AD 321년에는 주일을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처럼 로마의 황제가 예수를 믿게 되고 기독교가 국가의 인정을 받게 되니 이곳저곳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초로 하는 월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게 되었다.
로마 제국 내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6세기 중엽 제 53대 로마 교황은 요한 1세(AD 470~526)로 그의 교황 제위 기간은 AD 523년 8월 13일부터 AD 526년 5월 18일이었다. 그런데 교황 요한 1세가 AD 525년 씨시안 수도승(Scythian Monk)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거스(Dionysius Exiguus)에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월력을 만들도록 부탁하였다. 엑시거스는 예수님의 탄생이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사망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것을 근거로 기독교 월력을 만들게 되었다.
많은 연구 끝에 엑시거스는 헤롯 대왕의 사망연대를 그 당시 사용하고 있는 A,U,C. 754년으로 잡고, A.U.C. 754년 1월 1일을 AD 1년 1월 1일로 맞추어 월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AD 1년 1월 1일을 예수님의 할례 받은 날로 계산하여 정리하였다. 성경은 예수님이 그 당시의 율법의 규례에 따라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기록한다(눅 2:21).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일은 AD 1년 1월 1일로부터 계산하여 8일 전인 그 전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학자들이 엑시거스의 계산에 잘못이 있음을 발견했다. 학자들은 헤롯이 죽을 임박에 월식(lunar eclipse)이 있었는데 이 월식이 BC 4년 3월에 발생한 월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헤롯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가 BC 4년에 그의 통치를 시작하여 AD 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를 통치하는데 이 연대는 헤롯 대왕의 사망 연대를 확정지어 주고 결국 예수님의 탄생 연도도 BC 4년임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참조,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7. 13. 2).
결국 엑시거스가 헤롯 대왕의 사망 연대를 AUC 754년으로 잡은 것은 착오였으며 헤롯 대왕은 실제로 AUC 750년에 사망했고,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 연도도 BC 4년이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이 BC 4년에 탄생했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Harold Hoehner, Chronological Aspects of the Life of Christ. Zondervan, 1979, pp. 11~27). 우리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는 것은 엑시거스가 AD 1년 1월 1일을 예수님의 할례 받은 날로 계산하여 월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이지 정확한 예수님의 탄생일은 아니다.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박형용 저, 합신대학원출판부,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