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칼럼
요시야의 죽음
– 왕하(23:29-30) 대하(35:20-27)
<차광식 목사 | 금빛집교회>
신자는 주의 뜻을 바로 깨닫고 편협성을 벗어
부지 간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를 범치 말아야
인생, 신앙생활의 후반전에 조심하며
새 생명을 받은 자답게 부단히 자라가고 완성되어야
이스라엘 남북 왕조에 요시야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셋이 있다. 북쪽 이스라엘에 한 명, 남쪽 유다에 두 명이다. 이 둘은 다윗 계통의 왕들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세 명의 왕들 중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가 가장 선한 왕이다. 8세에 왕위에 오른 뒤 요시야는 31년 동안 아버지였던 아몬 왕이 우상숭배로 더럽힌 나라를 율법을 따라 철저히 개혁한 신앙 좋은 왕이었다. 이에 성경은 그를 평가하기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대하 34:2)라고 했고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18:5),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라고 그의 신앙을 높이 평가한다. 이런 신앙이 훌륭한 요시야가 상관없는 전쟁을 벌이다가 아깝게도 전사했다. 이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대하 35:24-25).
요시야가 전쟁을 벌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대하 35:20-22)
느고의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염려하노라” 이 말에 요시야는 불순종하였고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필자는 성경을 읽다가 이 부분에 와서는 특히 가슴이 아프다. 필자도 예수를 믿고 나서 죽음을 많이 봐 왔다. 신앙입문 초기 때, 초등학교 4학년 된 여학생이 백혈병으로 숨지자 교인들과 청년들이 꽃을 밤새 만들었던 적이 있고, 청년 때는 온 교회의 칭송을 받던, 신앙의 멘토이자 친구 였던 김모 선배가, 다니던 교회를 건축하다 그리 높지 않은 데서 떨어져 숨진 것도 마음이 아팠었다. 특히 요시야의 죽음은 성경을 해마다 읽기에 매년마다 느끼고 있다. 평생 주를 위해서 사명을 감당했는데, 단 한 번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다니 너무 안 됐고 슬픈 마음까지 든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볼 점은 무엇인가.
-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겸손해야
죄로 말미암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렘 17:9)을 지닌 인간은 완벽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신자가 아무리 잘해도 어딘가에 이르러 서는 나도 모르게, 또는 알면서도 인간의 죄성 때문에, 실수하고, 어느 순간, 무엇이 나를 씌웠는지, 잘못 판단하여 일을 그르칠 때가 있는 것을 성경의 역사에서나,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다. 신앙이 좋은 다윗도, 넘어진 적이 있다. 3년간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자 다 도망갔다.
멀찍이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따라온 베드로에게 여자 종이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막 15:67-72)라고 성경은 전한다.
참으로,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을 깊이 있게 느낀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이런 시험 앞에서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이런 결과로 신자의 깊은 속에서 탄성이 나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박윤선 목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덤비면 실패한다. 언제든지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행동하려고 조심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우리가 열심으로 주의 일을 했더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해야
바로 느고의 충고에 요시야는 가당치도 않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이방인이 감히 하나님을 들먹이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요시야는 선민이었고, 바로 느고는 불신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특히 열심이 있는 요시야는 바로 느고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하나님이 그의 영광과 신성을 특수한 때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우주 만물과 지구상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나타내심을 알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계시 하는 것이 아니다. 동방의 욥에게도, 모압의 발람에게도, 동방의 박사들에게도 계시하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고레스 왕이 명해서 된 것이다.
에스라 1:2에서 고레스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일을 나에게 명령했다”고 말한다. 이사야는 고레스에 대해서 “내 목자”(사 44:28)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특수한 경우에는 이방인을 통해서도 계시하거나 명령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시야는 율법을 힘껏 지켰고, 신앙의 열심이 있었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이스라엘 밖에도 계시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았어야 한다. 이 유대 중심의 편협성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방해한다. 요나도 그랬었고, 초대교회 사도들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이것이 결국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자는 신앙의 관점이 넓혀져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계속 자라가야 한다.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6:1)라고 하였다.
- 신앙은 인생의 후반전에 더욱 완성돼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요시야는 변장까지 했다. 왕상(22장)에 보면, 아합 왕도 선지자 미가야가 경고가 걸렸던지 자기는 변장을 했다. 아합이나 요시야나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가 어느 정도는 마음에 와 닿아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변장을 한 것이다. 변장을 하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거부했기에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아합 왕은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었고, 요시야도 활 쏘는 자가 변장을 한 요시야 왕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요시야를 향해 쐈다. 이에 요시야가 중상을 입고 예루살렘에 급히 왔으나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사실 아합 왕이 죽은 것은 아깝지 않은데, 요시야 왕이 죽은 것이 애석하고 안타깝다.
신자는 특히 인생의 후반전이나, 신앙생활의 후반전에 조심해야 한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의 초기 때나, 젊었을 때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업적을 많이 쌓았더라도 신앙의 후반전이나 말미에 가서는 불행한 결말을 맺는 것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성경적인 것도 아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의 말년은 빛났으며, 모세는 죽을 때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하며, 여호수아, 갈렙,사무엘도 말년에 신앙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다윗도 죽을 때 수넴 여인 아비삭과 솔로몬에 연관해 바른 분별력이 있었음을 보였다. 또한 바르실래, 신약의 안나, 시므온 등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말년에 신앙이 더욱더 완성된 모습을 바른 분별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새 생명을 받은 신자의 특성은 중단 없이 계속 자라가고,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