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명품 교단을 더 만들어 가자! _ 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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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명품 교단을 더 만들어 가자!

 

<변세권 목사 | 온유한교회>

 

합신만큼만 하라는 당당함으로

사람들 앞에서 바른 복음을 자랑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다시 교회 생활로 돌아왔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로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코로나19로 신앙과 전염병과의 문제로 갈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교단은 평소 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되고 뿌리가 깊은 터라, 나름대로 잘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따져보면 하나님에게는 자연과 초월이라는 구별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초월에 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의 방법이지만, 자연에 속하고 자연 질서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 신앙이 아니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일, 초월적인 일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창조주로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질서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는 신자와 불신자의 구별이 없다. 이 자연계와 창조 세계 안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간섭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그러나 그 구원은 결국은 우리로 초월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의 통치를 알게 하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지 초월이라는 영역으로 도망을 가서, 자연이라는 영역은 백안시하는 그런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이런 초월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통치와 일하심을 모르기에 생긴 오해로 우리의 신앙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게 된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신앙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그냥 사는 식의 신앙체계를 만들게 된다. 그러니 우리 개혁주의 교회관에 따른 개혁된 교회 성도로서는 나름 바른 복음을 소유하였고,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를 이루고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니, 범사에 자랑스러워하고 나름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혹 기회가 되어 다른 복음과 직면하게 될 경우에는, 한 순간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림이 없이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진리를 드러내고 부각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시종일관 부드럽고 온유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이겨보겠다거나 굴복시키겠다거나 등의 호전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니, 마땅히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고 순종해야 하지 않겠소 하는 부탁과 호소와 선한 권면의 마음이 충분히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는 자세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복음의 진리성과 관련되는 한,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의 기분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은 사라져버리고, 사람 앞에서 아첨의 말이 입술에서 구슬처럼 술술 구르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돌이키는 문제는 하나님의 권한에 있지만, 씨앗(바른 복음 제시)을 심고 물(바른 복음 설명)을 주는 일만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몫이니, 필히 받들어 수행해야 한다.

구원 받은 사람은 공통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이중의 빚을 진 자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 빚을 졌다(롬8:12). 이것은 안으로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로되, 바깥으로는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여하튼 범사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처신함으로써, 성도의 신앙생활은 항상 자기 자신의 만족이나 성취로 그쳐서는 안 되고,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의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되어야 하므로, 결국 하나님 나라 건설의 빚을 진 자들인 것이다.

둘째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빚을 진 것이다(롬 1:14).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놀라운 복음 증거의 업적을 세웠지만, 실로 유럽 전역에 교회를 세우는 어마어마한 공로를 세웠지만, 겸손하고도 또 겸손하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그렇다.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무슨 취미생활 하듯이 히는 것은 측은한 태도이다. 원칙적으로 성도로서는 범사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리를 적용하는 태도와 자세가 올바르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형성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중에도 기초가 튼튼한 우리 합신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듯이 바른 복음을 소유했으니, 겸손하게 처신하되 의당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큰 자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복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진지하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합신 만큼만 하라는 당당함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바른 복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부끄러운 일도 의기소침할 일도 아니다. 우리의 이웃 교단들과 이웃 사회 구성원들과 잘 지내되 지금이 바로 교계와 세상 앞에 준비되고 훈련된 우리 합신이 겸손한 마음과 진정한 실력으로 나아갈 기회이다. 말로만 합신이 아니라 진실하고 겸손한 실력으로 명품교단을 더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청보리 밭에 부는 바람으로 세수를 한 것처럼 청신한 마음으로 교회를 아름답게 섬겨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