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논단| 영상 예배로 성찬식을 행하여도 되는가? _ 김병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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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단|

 

영상 예배로 성찬식을 행하여도 되는가?

 

<김병훈 교수 | 합신, 조직신학>

 

성찬이 시행되는 동안에 임하는 특별한 은혜는
같은 장소에 함께 있음으로써 받는 은혜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회집이 어려운 상황에 교회는 공예배를 영상으로 또는 예배문을 전달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고난주간과 부활감사주일이 다가오면서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성찬식을 겸하여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검토할 때 영상 예배로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신학적 관점이나 실천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우선 성찬은 실제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 공동체로 모여서 행하여야 마땅합니다. 성경은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전 11:33)고 교훈합니다. 이 말씀은 판단 받을 만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성찬식에 참여하는 자들이 자신을 살펴 합당히 할 것을 권하는 교훈이지만, 여기에는 성찬식은 ‘모여서’ 하는 것임을 또한 분명히 가르칩니다.

2) 물론 주일에 모이는 공적 예배도 공간과 시간을 같이하여 한 자리에 모여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이기가 어려운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예배의 질서를 따른다는 조건 아래, 온라인을 이용하거나 당회가 배포한 예배문을 읽으며 각 처소에서 드리는 것을 제한적으로 인정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온라인 예배나 예배문을 읽는 예배를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까닭은 주일 공적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의 강설에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온라인 영상으로 주일 공적 예배를 드리면서 세례와 성찬과 같은 성례의 예식을 함께 행하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히 성례는 말씀 사역과 함께 시행이 되어야 하며 말씀을 인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편은 반드시 한 공간에 함께하는 공간성의 확보를 요구합니다. 현장에 없는 수세자에게 물로 세례를 줄 수 없듯이, 현장에 없는 수찬자에게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지금 이곳에 있는 수세자에게 주는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성찬은 지금 이곳에 있는 성찬회원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중 가운데 참석하지 않은 자에게는 남은 성찬을 나중에 남겨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WCF 29.3).

4) 우리가 믿는 신학에 따르면, 성찬요소인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며, 성례전적 연합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제시합니다. 주님께서는 성찬식을 행하는 가운데 주님의 몸과 피를 제시하는 표지인 빵과 포도주를 통하여 성찬에 임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임재하십니다(WCF 29.7).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에 수찬자는 주님의 몸과 피를 영적으로 먹으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연합하고,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은택들을 누리는 영적인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은 성찬이 시행되는 동안에 임하는 특별한 은혜이며, 같은 장소에 함께 있음으로써 받는 은혜입니다.

5) 성례는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지이며 인입니다.(WCF 27.1) 성례의 효력은 제정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달려 있습니다.(WCF 27.3) 말씀과 성령의 사역으로 인하여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 죽음을 기억하고, 이 죽음으로 인하여 신자에게 베푸시는 은택을 인치고, 신자로 하여금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 성장하도록 하며, 주님의 일을 더욱 더 감당하도록 합니다.(WCF 29.1) 이처럼 믿음을 강화시키는 성례는 실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적어도 3개월마다 성찬을 베풀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성찬을 얼마나 자주 할 것인가는 당회의 결정에 따르도록 합니다. 당회가 성례를 행할 사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성례를 행하지 않는 것은 옳은 결정일 것입니다.

6) 이상의 신학적 논점들 이외에, 각 처소에서 영상으로 성찬예식을 행하고자 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문제가 또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처소에서 집례자인 목사를 대신하여 성찬을 나누는 자의 적법성 문제,

– 처소에서 나누는 빵과 포도주가 영상 예배로 집례하는 빵과 포도주와 동일한 것인지의 문제,

– 처소에 빵과 포도주를 미리 배분한다고 할지라도, 집례자가 예식에 따라서 감사 기도를 올린 후에 떼어서 나누어주는 빵은 감사 기도로 성별된 동일한 빵을 나누는 것이라는 점에서 성별이 되기 전에 처소에 미리 배분된 빵을 받는 것이 적절한 가의 문제,

– 성찬요소가 남을 경우에 처리 문제,

– 성찬에 참여하지 않아야 할 자들이 임의로 참여하게 되는 일의 가능성과 관련한 문제 등입니다.

이러한 문제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은 성찬예식의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실로 무례한 일입니다(참고 WCF 29.8). 그렇기 때문에 영상 예배로 성찬식을 행한다는 것은 성찬의 질서를 거룩히 지켜야 하는 당회의 임무를 소홀케 하거나 방기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신학적 이유들과 실천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영상으로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는 가운데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 공적 예배를 드리는 날을 사모하며 성례식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더욱 유익할 것입니다. 성찬식을 모여 행할 수 있는 날을 소망하도록 하는 일은 공적 예배의 현장성의 중요성을 잊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흩어져 영상으로 예배하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예배당에 모여야 할 공적 예배의 중요성을 자칫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습관이 형성되는 것을 경계하는 인식도 일깨워 줄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어 이 사태가 속히 진정되기를 더욱 바라며, 성례의 은혜를 족히 나눌 때가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