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BC 운동의 깃발을 한번 쳐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LCBC는 “교회
로 교회되게 하라(Let the Church Be the Church)”는 말의 영문 첫자들
을 제가 멋대로 따다 붙인 것입니다.
재작년에는 제가 유학을 했던 학교에 다시 가서 한달을 지냈는데, 하루
는 교회에 대한 연구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노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이 분을 방문하는 것은 제가 그곳에 다시 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
도 하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본질이 어떻게 현장에
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저의 고민을 털어놓았
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
시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첫 마디에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것(Let the church be the church)”이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은 하나님으로 하나님되시게 하는 일
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이
잘못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이 크게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이 주제에 대한 대화로 교수님의 2층 서재를 오르내
리며 한나절을 같이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LCBC”라는 네 글
자가 마치 혁명구호처럼 제 마음과 머리 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인데 교회가 아닌 교회가 있을 수 있는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건물도, 장소도, 시설도, 프로
그램도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관련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교회라면, 결국 신자들로 하
여금 신자답게 살게 하는 일이야말로 교회로 교회되게 하는 일의 관건이라
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당
하는 불신과 치욕과,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당하는 능욕,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의 상실 등 우리가 진통을 앓고 있는 이런 저런 아픔
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은 것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아에 고소를 당한 사람이 야소교를 믿는 사람이면, 포승줄로 묶어서
잡아오지
않고 아무날 아무시까지 관아로 나오라는 통지만 보내면 될 만큼
신자들이 신뢰를 받는 때가 있었습니다.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산 사람이 야
소교를 믿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발령이 나면 임지를 바꾸어 달라고
조정에 청원을 할 정도로 신자들이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삶으로 유명한
때가 있었습니다. 백여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초창기 시절의 이야
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로부터 그렇게 신뢰를 받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때는 비율로 따지면 사람 일만 명을 모아놓고 예수쟁이 손들라
면 단 한 명이 손을 드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길가는 사람 너댓 명
만 모아놓고 물어봐도 그중에 한 명이 손을 드는 판입니다. 국회에 들어가
서 예수쟁이 손들라면 반수가 손을 드는 판이고, 국무회의를 열고 손들라
해도 상당수가 손을 들 판입니다. 일년 반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에 들어가
서 예수쟁이 손들라면 대통령이 제일 먼저 손을 들 그런 판이었습니다. 온
통 예수쟁이 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 교인을 늘리는 일과 교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일이 얼
마든지 아무런 관련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생한 현장을 보고 있습
니다. 교인 수가 많아지다 보니 이런 사람도 생기고 저런 사람도 생길 수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자위하기에는 우리의 낯이 너무 간지럽고, 우
리의 양심이 도리질을 하며 너무 큰 소리로 쿵쿵거리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을 달리하고, 그리하여 삶을 달리하려는 심각한
결단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