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레에게_ 장수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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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에게

|번역 장수민 목사, 칼빈 아카데미 원장|

 

 

“그리스도를 떠나 통치하려는 정치가들 많아”

이렇게 늦게야 답신을 보내는 나의 뻔뻔스러움을 좀 보게나! 여하튼 나는 편지 쓰기의 고민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고안하였다네. 그래서 앞서 루터 박사님과 멜란히톤 선생님께 보냈던 편지를 복사하여 자네에게 보내네. 그러면 자네는 내가 왜 클로드를 그분들께 보냈는지 알게 될 걸세. 

 

자네의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파렐 형님이 출판사 지라르에 보냈던 책을 텍스토가 크리스토퍼에게서 받아왔다네. 빨리 인쇄된 덕분이라네. 나는 아직 루이 베르나르와 말을 해 본 적은 없네. 그는 이미 내가 설교하는 예배에 두 번이나 빠졌어. 하지만 내일이나 모레라도 만나면 자네의 사과를 전하겠네. 

 

자네가 올 때에 라 콩에 관하여 들을 수 있겠지. 내 생각에 나의 귀들은 현재를 향해 있고, 그들은 타인들의 험담을 억지로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어둠 속에서 위선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지. 

 

앙블라르 콘은 자신의 치리회 위원과 제네바 행정 부장직을 쉬게 해줄 것을 위원회에 요구 중이야.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위원회의 비밀 회의에서 숨겨왔던 서민들의 문제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지. 위원회는 나도 이 일을 알고 있지는 않은가 하여 의심하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어떤 적대감은 보이지 않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고 있고, 열 번의 설교를 통해서 이미 도시의 내부 상황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이 미로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이번에는 직접 와서 귀로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자네가 눈으로 직접 보게나. 

 

그리고 행정장관들이 정해졌네. 아미 퀴르텟, 아미 페렝, 도멘느 아를로, 쟈크 드 토르톤느, 루이 베르나르, 피터 베른,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이 위원회에 들어가도록 섭외 중이라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좋은 기대를 하고 있네. 하지만 그리스도 통치 아래 있으면서도 정작 이제는 그리스도 없이 통치하고 싶어 하니, 우리로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그럼 이만 줄이겠네. 

 

나의 친애하는 형제이자 친구여, 우리 동료들 모두 자네와 자네 식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네. 나를 대신해서 리비티와 엥베르에게도 인사해 주기 바라고, 엥베르의 아내가 페로에게 보내고 싶은 것이 있는지 자네가 확인해 주었으면 싶어. 왜냐하면 선한 친구 페로가 매우 열망적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야.

1545년 2월 12일 제네바에서,
존 칼빈

 

 

 

해설: 칼빈의 생애에서 1548년 9월 14일(금)에 칼빈이 트롤리에(Trolliet)와 함께 시의회의 소환에 출석하여 시의회에 사과하여야만 하는 특이한 일이 있었는데, 칼빈의 전기들마다 한결 같이 소개하고 있는 독특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칼빈이 1545년 2월 12일(목)자로 비레에게 썼던 오늘 이 편지를 페렝 가문의 한 사람이 훔쳐 편지에 기록된 내용을 문제 삼아 칼빈을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하였다. 트롤리에는 이 편지를 아예 모든 시민이 알아볼 수 있게끔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여러 곳에 뿌리고 다녔다. 
편지에는,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칼빈이 행정관들의 선출에 관해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를 가장하여 통치하려 한다는 투의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시의회의 분노를 샀던 것이다. 
이것을 문제 삼아 한 때 칼빈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까지 있었으나 파렐과 비레가 9월 말과 10월 중순 이전에 시의회에 출석하여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이해를 시키는 등으로 활약한 덕에 위기를 모면하였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끝에 10월 18일(목)에 시의회는 두 사람에게 사이 좋게 지내라고 훈계하면서 사건을 종결지었다.